[황명숙 수상] 6월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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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는 형용사로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자랑스럽지 못하여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부끄럽다,는 감정은 자연적으로 터득한 다기보다 학습에 의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지나 밀림속에 사는 사람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우리 역시 아기였을 때는 기저귀를 찬 모습이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끄러움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보면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이지만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집, 차, 배우자, 아이들 등 나의 삶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 되고 우월감이나 부끄러움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단어가 자존감(自尊感)인데요, 일상적 활용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 정도로 사용됩니다. 자존심과 비슷하지만 용법상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마치 이 둘은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습니다.  자존심은 타인이 자신을 존중하거나 받들어 주길 바라는 감정을 의미하지만,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의미로 주로 쓰입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으로 정의할 수 있고, 자존감이 ‘(타인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명이 조금 길어졌지만 아무튼 부끄럽다,는 감정은 주관적인 ‘나만의’ 감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는 크건 작건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건 키나 외모, 경제력, 학력과 능력 등 많은 요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콕 집어서 이것이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자존감과 열등감은 반비례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나름 성공한 두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가정 환경으로 인한 고졸의 학력, 그리고 본인의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점, 벌어놓은 돈의 규모는 비교가 안되지만 노후를 편하게 즐길 여유가 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말 다릅니다. 한 사람은 고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해서 과거의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년에 천 만 달러가 넘는 매출이 있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고 30 에이커가 넘는 대지에 3 밀리언이 넘는 집에 살고 있는 그는 명품을 사기보다는 나누는 삶을 실천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삶을 삽니다. 또 한 사람 역시 건물도 여러 채를 가지고 살지만 최근 들어 허위 학력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의 빈축을 받습니다. 충분히 성공한 삶인데 굳이 이제 와서 가짜 삶을 만든다고 말이죠. 저는 이 두 사람을 보면 자존감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큰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 고생을 더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더 자유롭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 구절에 ‘성공한 사람의 비참했던 과거는 더 큰 영광이 되고, 실패한 사람의 화려했던 과거는 그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는 말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은 유기성같이 가짜 행복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 온갖 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5월, 그리고 6월에 이어지는 이즈음은 가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지만 오래 뽐내지 않고 찰나의 순간에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납니다. 오늘도 비 온뒤 말갛게 개인 하늘을 보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되어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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