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시간의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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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장마인가 싶게 한 주간을 쉬지 않고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은 다시 청량하게 개었습니다.
비 온 뒤의 공기는 습기로 눅진하기는 해도 모든 나무와 꽃의 잎들은 윤기가 돌고 생기가
돋습니다. 6월은 한 해의 시계추가 정확히 절반을 지나치는 시기입니다. 화사했던
봄꽃들이 서서히 자리를 물러서고, 머지않아 열정적인 컬러의 여름꽃과 짙푸른 녹음이 그
자리를 채워갈 것입니다. 그렇게 예열을 마친 시간은 쏜 살과 같이 빠르게 달려갈 준비를
할 것입니다.

문득 거실 벽에 걸린 뻐꾸기 시계가 웁니다. 무심코 손목시계를 보고야 벽시계의 시간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배터리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시간의 중심을 잡아주던 벽시계가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보며, 저는 의자를 딛고
올라가 시계를 내려놓았습니다. 새 배터리를 끼우자마자, 시계바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차고 정확한 박자로 초를 쪼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계는 참
단순하면서도 명료합니다. 에너지가 방전되는 기미가 보일 때 새 동력을 주입해주면 다시
새생명을 얻으니까요. 다시 힘차게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 바램이
마음 한 구석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 영혼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영혼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 나에게도 누군가 찾아와 조용히 새 배터리를 갈아 끼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의 제 생활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약간의 일과 일주일에 한
두번의 골프, 소수 지인들 과의 친목, 그리고 식물 돌봄으로 요. 생활은 조금
단조로워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저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때는 다양하고 폭넓은 인간관계가 제 인성의 반증인 것처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관리하며 살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나 고보면,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나눠주고, 또 타인의 열정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 가지만 실상 그것은
우리 내면의 에너지가 흩어지고 닳아지게 하는 요인입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충전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잡한 생활을 단순화시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의 시간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자동차를
봐도 그렇습니다. 신형 차를 보면 예전 차와 달리 많은 옵션이 들어가 있어서 보기에
근사하고 무척 편리하지만,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돈도 많이 들고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처럼 부품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문제까지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도 이러합니다. 교회안에서 만나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신앙인의
관점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매주 되 뇌이지만 막상 문제
해결을 할 때는 아집과 독선, 질투와 시기심이 저변에 깔린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
앞서는 경우를 셀 수 없이 많이 목격했습니다. 거룩한 마음은 교회안에 머물 때만 생기는
모순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나약한 우리에게는 기계들처럼 물리적인 부품
교체가 아닌 ‘마음의 충전’이 필요합니다. 그 충전은 대단한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지쳐 속도가 느려졌음을 눈치채 주는 다정한 시선, 피곤해 보이는데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로 제안하는 커피타임, 혹은 내가 쏟아내는 말들을 묵묵히 들어주는 침묵 속의 동행.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서로에게 끼워줄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이고 따뜻한
배터리라고 봅니다.

배터리를 바꾼 시계를 벽에 다시 걸어두며 다짐해 봅니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방전된
하루를 알아채고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주저앉았을 때 내 벽을 따뜻하게 채워줄 누군가의 온기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6월, 초여름의 길목에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