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가을 (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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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낙엽은 그 자체가 또다른 비가 되어 차창에 날아
듭니다. 하늘에선 끝없이 낙엽이 춤을 추며 떨어지고 떨어진 낙엽은 포도(鋪道) 위를 뒹굴며
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구어 줍니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됩니다.
괜스레 인생이 무상해지고 또 자주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을은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가을은 우리를 사색하게 하고 철이 들게 합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가 아니더라도 호수위에 떠있는 하이얀 구름과 울긋불긋 오색의
단풍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호수라도 거닐 냥이면 그 아름다움은 천국처럼 느껴지고 감탄은
탄식처럼 흘러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가을시 두 편을 소개하며
분위기에 젖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 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라는 시 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는 안 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 입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이 가을에 저는 3박4일간 봉사를 다녀 왔습니다. 사실 봉사라고 부를만큼 대단한 봉사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성화(聖化)를 위해 제가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오니, 제가 더
많이 깨닫고 나누었는데 더 부자가 된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분명히 제가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간건데 무언가 더 많이 채워진 이 느낌 때문에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늘
고생을 하면서도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겠지요. 늘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참 좋을텐데 현실 세계로만 돌아오면 각박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농부들은 추수를 통해 한 해를 갈무리하고 동물들도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갈무리하며 이 계절을 보내야 할지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