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비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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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진 목사 (골스보로 한인장로교회)

본문 말씀: 로마서 1장 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가짜 다이아몬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보석 감정사들이 진짜 다이아몬드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큐빅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빛’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손전등을 비추면 가짜 큐빅은 표면만 번쩍이지만, 진짜
다이아몬드는 빛을 흡수하여 내부에서부터 영롱하고 깊은 빛을 뿜어냅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그 본질과 가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 기독교 안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외형은 신앙생활
같아 보이지만 알맹이가 다른 두 가지가 공존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과 ‘비복음(유사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진짜 생명을 주는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속이는
비복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분별하고자 합니다.

첫째, 비복음은 ‘나’ 중심이며, 복음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비복음은 언제나 ‘나’에게 집중하게 만들지만, 참된 복음은 ‘하나님’께 집중하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서도 비복음에 속아 살아갑니다. 비복음의 대표적인 형태는
‘기복주의’와 ‘인본주의’입니다. “예수 믿으면 사업이 대박 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의 자리에 ‘나의 성공’과
‘나의 행복’을 우상으로 올려놓은 비복음일 뿐입니다.

성경 본문 17절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복음은 나의 의로움이나 나의 성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사건이 바로 복음입니다. 비복음은 “내가 무엇을
얻을까”를 묻지만, 참된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나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둘째, 비복음은 ‘행위’를 요구하나, 복음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비복음은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지만, 복음은 오직 믿음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종교도 선행과
고행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려 합니다. 이것이 비복음, 즉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짐을 지웁니다. “네가 이만큼 봉사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네가 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이다”라며 인간의 행위에 구원과 축복을 담보 잡습니다.
그러나 본문 1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따내는 보상 상품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대속의 은혜를 그저 손을 벌려 선물로 받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행위에 갇힌 비복음은 우리를 절망이나 교만으로 이끌지만, 믿음의 복음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셋째, 비복음은 무기력하나, 복음은 모든 자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비복음은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지만, 복음은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서 ‘능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Dunamis)’이며, 현대 단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좋은 도덕적 강연이나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영혼을 폭발적으로 깨뜨리고 살려내는 실제적인 신적인 힘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원래 가톨릭 수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릎에 피가 나도록 돌계단을 기어올랐고, 밤새도록 금식하며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인간의
행위와 종교적 고행이라는 ‘비복음’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영혼은 늘 지옥의 공포와 절망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는 바로 오늘 본문인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앞에 거꾸러졌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복음의 능력이 그의 영혼에 부딪쳤을 때, 그의 마음에 묶여 있던 죄책감의 사슬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하며 끊어졌습니다. 루터는 훗날 이 순간을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려 내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비복음은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복음만이 가진 구원의 능력입니다.

결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있는 것은 진짜
다이아몬드 같은 복음입니까, 아니면 가짜 큐빅 같은 비복음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여전히 이 땅의 성공과 내 만족에 머물러 있다면, 나의 행위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하려 애쓰고 있다면, 우리는 비복음의 그늘 아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당대 로마 제국 사회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전하는 것은 부끄럽고 미련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능력임을 알았기에 당당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내 힘을 빼고, 오직 주님의 의로우심만 의지합시다.
세상의 가짜 위로와 성공주의라는 비복음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참된 의인의 삶,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증명해 내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