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시상] 자연에서 신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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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모퉁이를 돌아 어느덧 9월의 선선한 바람이 페리오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다닙니다. 뜨거웠던 여름의 기운이 한풀 꺾이고 볕이 따갑지 않고 적당해지는
요즘에도, 제 일상은 피로를 잊게 만드는 취미생활(?)로 여전히 바쁩니다. 페리오 한
켠에 달아둔 세 개의 먹이통 주변으로 하루 종일 작은 생명체들이 바쁘게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1초당 80번에 달하는 바쁜 날개 짓으로 공중에 가만히 멈춰 설 수 있고,
새들 중 유일하게 뒤로도 날 수 있는 경이로운 생명체, 바로 허밍버드(벌새)들입니다.
제 손가락 마디 하나 될까 말까 한 이 조그마한 새들이 여름부터 지금까지 제 삶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무려 열다섯
마리가 넘는 녀석들이 찾아오다 보니 매일 깨끗한 설탕물을 만들어 채워주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수고로움이 듭니다. 아침에 듬뿍 채워놓고 저녁에 돌아와 보면
먹이통이 말끔히 비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즘은 농담 삼아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쟤 네들 설탕 값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 작은
체구로 무슨 설탕물을 그리 많이 먹겠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뻥이 아니냐며
웃어넘기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날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의
날개 짓으로 높은 대사율을 유지해야 하는 허밍버드에게 꿀물은 생존 그 자체입니다.
그 자그마한 체구로 치열하게 날개를 저으며 먹이통 주변을 맴돌거나 나란히
먹이통에 앉아 고개를 주적거리며 목을 축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귀여움에 심장이 턱 막힐 정도입니다. 긴 시간을 지켜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요즘처럼 지치고 바쁜 날일수록, 이 늘어난 부양가족(?)들을 돌보는 일은
육체적 피로를 더해주지만, 동시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친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듯한 위로가 되어줍니다.

작은 새 한 마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일에도 이토록 마음이 행복해지는데, 문득
최근 지인에게서 들은 한 신앙인의 이야기가 이와 반대로 오버랩 됩니다. 그 사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교회 활동에 열심이고 신앙생활의 겉모습은 모범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의 삶으로 들어오면 모든 생각과 행동이 오직
자기중심적이라 타인에 대한 양보나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면 상대방의 처지나 감정은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이기적인 요구를 쏟아내어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우들 사이에서조차 ‘저 사람을 보고는 누구도 신앙을 가질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개탄 섞인 말이 들려올 정도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거룩한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신앙인들을 볼
때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과연 우리 삶에서 신앙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믿음의 깊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일지 몰라도, 그 믿음이 열매 맺는 자리는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타인과의 관계이어야 마땅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기도나 열성적인 종교
행위보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길은, 내 곁의 이웃을 배려하고 마음
한 조각을 양보하는 데에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내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타인을 위해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그것이야 말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자 계명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배려나 양보를 두고 누구나 다 하는 평범한 일 안이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당연해 보이는 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9월의 맑은 공기를 느끼며 저는 다시 페리오의 먹이통을 바라봅니다.
손가락만 한 허밍버드에게 정성껏 설탕물을 타서 내어주는 제 마음에는 어떠한
대가나 이기적인 계산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의 문을 나설 때 우리의 신앙도 함께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내가 조금 덜 가지고, 내가 조금 더 불편해 지더라도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삶. 9월의 깊어 가는 가을 햇살 속에서, 허밍버드가 주는 소박한
행복을 품고 다시금 저 자신과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행위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조용히 실천하는 묵묵한 배려와
양보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