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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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벽녘 어깨를 스치는 찬기운에 이불을 끌어당기는 것을 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10월이네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고 사회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도 시간은 예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 오는군요. 자연의 시간은 여전한데 우리들만 갈길 잃어 우왕좌왕하며 산지도 벌써 2년여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어제는 공원에 가서 벤치에 잠깐 앉았다 왔습니다. 낙엽이 한 잎 두 잎 허공에 맴돌며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 소리와 평화로운 새 소리, 땅콩에 맛들인 다람쥐가 겁도 없이 제 발치에서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저는 잠시 현실의 어려움을 잊었습니다. 현실은 플라스틱 가드와 마스크가 상대방과 나를 가르지만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과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너무나 당연했던 익숙한 것들이 하면 안 되는 것들로 규정지어지고 두 번째 가을을 맞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버렸습니다. 제 기준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실천 했다고나 할까요. 여기서 제 기준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제가 몇 가지 물건을 버리고 정리한 것이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본래 의미의 미니멀리즘,이란 정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하고 단순한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쓸데없는 걱정과 신경쓰이게 하는 수많은 물건들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내 삶의 의미와 목적, 목표, 건강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걸리적거리는 것을 내려놓고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나의 행복과 순간들을 자유롭게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스트들이 강조하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는데 일단 소유욕이 줄어들어 물건을 사들이거나 소비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된다는 점, 집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이 적어지니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청소할 필요가 없으니 더 많은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고 절약한 돈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등등을 꼽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물건을 보면 열광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때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인가는 차치하고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구매해서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군)들은 얼리 어답터대로, 부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사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점점 좁게 느껴지고 우리들은 또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크지 않은, 한 마디로 잉여 공간이 별로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무언가를 사들이면 또 무언가를 버려야 그나마 깨끗한 공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사들이고 버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왕래가 줄어들다 보니 그동안 제가 필요하다고 사들인 물건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라는 늦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집안에는 불필요한 혹은 중복되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 리모델링 공사하느라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주면서 정리를 했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란 제 기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미니멀리즘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뿌리에 물을 내려 저장하고 잎새의 물은 말려 낙엽으로 떨구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할까’라는 단순한 화두(話頭)로 가을의 문을 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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