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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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라는 의미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ism)를 결합한 ‘미니멀리즘은 2차 세계대전 후 1960-1970년대에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합니다. 이는 기교를 최소화하여 사물의 기본을 표현할 때, 대상의 고유한 성질, 즉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전제입니다. 미술에서 시작된 이 미니멀리즘은 이후 건축, 음악, 패션, 철학 등 인접한 분야까지 확산되면서 생활속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적을수록 더 풍요롭다 (Less is More)

제가 새삼스럽게 미니멀리즘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유는 지난 몇 달간 집을 사기 위해 마켓에 나온 집들을 보러 다니고, 또 제가 살고 있는 집을 팔기 위해 짐을 정리하면서 제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우징 마켓에 리스팅 되어 있는 집을 보면 보기 좋게 스테징(staging)되어 있는 곳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전문가의 손질로 실내가 메이크업 된 경우도 많고 그냥 깔끔하게 치워진 집도 많습니다. 어느 경우라도 중요한 것은 치우는 것이고 감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은 감추는 대신 정리해서 버려야 합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곤도 마리에,라는 일본 작가의 책인데 ‘그냥’ 정리가 아닌, 정리에도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다. 2. 정리로 가릴 것은 버릴 물건이 아니라 남길 물건이다. 3.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만졌을 때 설레는가,이다. 4. 정리를 가족에게 하지 말라. 5. 친정에게 버리는 물건을 쌓아 두지 말라. 6. 물건별로 정리하라. 7. 일생에 한 번 ‘축제의 정리’를 경험하라. 8. 이후에는 물건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두는 것 뿐이다. 9. 벌릴지 고민이 되는 물건은 ‘역할’을 생각해본다. 10.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한다.

저는 원래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고 수납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집에서 살다 보니 수시로 버리는 작업을 하면서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20년을 넘게 살아온 집의 짐을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쓰지도 않으면서 사놓기만 한 물건이나 식료품들은 얼마나 많은 지, 최근 2년 동안(물론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또 얼마나 많은 지, 짐을 버리면서 참 많은 반성과 성찰을 했습니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내 삶에 끼어 있는 많은 거품들을 제거하는 것은 내 삶에 남아 있는 시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질적 미니멀리즘의 장점은 많고도 많겠지만 위에 언급한 한 줄의 글처럼 ‘적은 것이 풍요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이 가지면 삶이 더 풍요로울 것 같지만 사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옷이 단벌인 사람은 ‘무엇을 입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선택의 여지가 많을수록 생각할 시간도 많아야 합니다. 적게 가질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전문가들은 물건을 살 때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지만, 특정 유형의 유리그릇이나 물통으로 가득한 찬장은 필요 없다는 말이죠.

집을 팔기 위해 짐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육체적으로 무척이나 고달픈 시간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이라는 혈관에 끼인 많은 노폐물들을 제거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당분간 필수적인 식료품을 사는 것 외에 나자신을 꾸미기 위한 지출은 없을 듯합니다. 버려서 비워진 곳, 그 여백의 미(美)를 최대한 감상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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