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새해 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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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또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받았던 시간 선물은 알차게 쓰셨나요? 오늘 새벽에 또다시 8760 시간, 525,600분이라는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공짜로 받는 선물이라 그런지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세상일은 불평등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주어지는 시간만큼은 참 평등한데, 어떤 사람은 시간을 잘 운용해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저처럼 낭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아쉬운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섬>이라는 시를 쓴 정 현종 시인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너무 짧아서 유명한, 그리고 함축된 의미가 커서 유명한 시입니다. 또 그가 쓴 <섬> 만큼이나 좋아하는 시가 <방문객> 이라는 시, 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현재와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현재는 과거에 매여 있고, 또한 현재는 미래와 연결되는 통로이므로,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지속되기 힘든 일입니다. 새해 새날을 맞아 지난 시간 있었던 만남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중에는 사는 동안 계속 만나고 싶은 인연(因緣)도 있고 할 수만 있다면 삭제 버튼을 누르고 끊어내어 버리고 싶은 악연(惡緣)도 있었습니다. 전 성경을 믿는 사람이지만 스님들의 말씀도 좋아하는데, 특히 사람 사이의 인연에 관한 글을 많이 묵상하는 편입니다. 특히 제가 사람을 잘못 보고, 상처를 받았을 때 스님들의 말씀은 큰 위안이 됩니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는데 저는 늘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원래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 진실을 투자합니다. 법정 스님은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가는 해가 없을 정도로 해마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의 잘못이라 기보다는 사람 보는 눈이 막 눈인 제 잘못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제게 사람을 가려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언젠가 본 좋은 글 중에 역설적 십계명 ‘그래도’가 있습니다. 이 글은 변호사, CEO, 대학 총장 등을 지낸 켄트 M. 키스가 하버드 대학 2학년 때 자신을 위해 썼다는데 마더 데레사 수녀도 감동해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고 해서 유명한 글입니다.
1. 사람들은 엉뚱하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라. 2. 좋은 일을 하면 이기적인 속셈이 있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3. 성공을 하면 거짓 친구와 진짜 적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성공하라. 4. 오늘 한 좋은 일이 내일 잊혀질 수 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5. 정직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흠이 잡힐 수 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6. 큰 생각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 작은 생각을 가진 소인배에 쓰러질 수 있다. ‘그래도’ 큰 생각을 품어라. 7. 사람들을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워라. 8. 당신이 오래 쌓아 올린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쌓아 올려라. 9. 사람들이 도움을 원해 도와 주었는데 오히려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을 도와라. 10.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주어도 되려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최고의 것을 주어라.
원수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 는 성경 말씀만큼이나 실천하기 쉽지 않고 몇 가지는 저도 수차례 경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저는 또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내년 이맘때 같은 넋두리를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비록 작심삼일로 끝날지 언정 목표를 세우는 일은 가슴 설레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추억 속에 살아있고 누군가를 추억하면서 살아갑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제가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쓸 글 중에 하나라도 독자 여러분들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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