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아, 3월…

0
191

어제는 2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고 제가 사는 그린스보로 지역에서는 3.1절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한국학교 아이들과 한인회 및 연장자회 그리고 다수의 목회자 여러분들과 함께 저도 오랜만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오래전 한국학교 및 한인회에 봉사할 때는 반은 의무감으로 참석한 행사였는데 이제는 저도 나이가 먹은 탓인지 느낀 바가 남달라 몇 자 글로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반만년에 걸쳐 독립을 지켜왔던 우리나라는 1910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한국의 민족 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학생이었을 때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로 시작되는 독립 선언문을 배웠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 만 민중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아 우리의 독립을 널리 퍼뜨려 알리는 것이고,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는 세계 개조의 큰 뜻을 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독립을 주창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며 전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권리를 얻기 위한 정당한 주장이자 활동이므로,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독립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오천 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십 년을 넘어섰다.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긴 지 몇 년이며, 정신 발전의 장애를 입은 것이 얼마나 크며, 민족적 권위와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또 얼마나 막심하며, 우리의 지식과 재능, 독창적인 발상으로 인류 문화의 큰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울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가…..(중략)’

학생이었을 때는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았고 외우는 것도 귀찮았던 독립선언문을 학생들과 함께 앉아 듣는데 얼마나 가슴이 울컥하던 지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모든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분들의 열망이 응축되어 있는 구절구절이,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한국을 또 한 번 손에 넣으려는 일본의 야욕이 한미일 공조라는 명분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사회 곳곳에 숨어 있으면서 국민들을 호도하는 친일세력들 때문에 걱정스러운 시기라서 더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가 강력히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 구 선생의 바램처럼 전세계에 BTS의 아미(팬클럽)가 있고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전세계 시청률 10위권을 휩쓸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주 지역 교회에서 열린 바자회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준비한 음식들이 모두 동이 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K-Culture Power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강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떼를 쓸 만큼 말이죠.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고 싶다,고 선구자들이 열망했던 그 시대를 우리가 고마움없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학교 학생들이 만든 태극기로 만세삼창을 하며 애국 선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추적이며 내리고 흐드러지게 만개한 봄꽃 나무 여린 잎새들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곧 봄이 오려 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