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가을 단상(斷想)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폭염도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할만큼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의 초입 9월말입니다.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흩날리는 것은 여느 계절과 다를 바 없지만, 유독
가을비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우리의 시상을 깨우고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돋아나는 푸른 새싹을 볼 때와 달리, 달리는 차창에 몸을 부딪쳐 붉고
푸르게 멍들어가는 낙엽을 보며 문득 인생의 허무함이나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요? 가을은 내 안을 부질없이 무성하게 채우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며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좋은 글들과 책을 읽으며 느낀 제 상념들을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그중 몇 가지는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읽은 대로 소개합니다. 1. 말을 아끼는
것이 최고의 처세술이라고 합니다. (제 친정 어머니가 늘 하신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와 일맥상통하는 얘기인 듯합니다) 2. 남의 비난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그러게요. 내 인생인데) 3.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다. 4.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입을 닫고 침묵하라. (화가 나면 유독
말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5.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변한다.
우리는 살다 보면 참 많은 것들을 모으고 움켜쥐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젊을 때는
크고 좋은 집을 꿈꾸며 부단히 노력해서 집을 장만하지만, 중요한 것은 집의
크기보다 그 안에서 누리는 내 마음의 편안함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삶보다 내가 만족함을 느끼는 삶이 훨씬
중요합니다. 내가 그 편안함을 누리기 못하고 떠나면 결국 그 집은 다른 사람의
처소가 될 뿐입니다.
통장에 적힌 숫자 역시 잘 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을 줄
알았다면 잘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나 타인의 평가도 계절의
변화처럼 오래가지 않기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보다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체면이나 남의 시선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며 남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오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오래된 미움을 품고 사는 것은 상대를 아프게 하기보다 내 소중한 마음과 시간만
빼앗을 뿐입니다. 용서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나를 미워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언행들이 타인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모르고 하는 타인의 행동
때문에 내가 고통받기에는 내가 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삭제해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값비싼 옷과 차 역시 우리의 가치를 결정해주지 못합니다. 남들과의 비교나 자식의
성공 등에서 내 행복의 의미를 찾지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는 여정이 중요한 나이에 우리가 도달해 있는 것입니다.
푸릇한 생명력과 화려함을 뽐내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가을이 보여주듯, 돈도 사람도 젊음도 언젠가는 모두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사랑하고 마음껏 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때가 되면 아래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움켜쥐고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치 있게 쓰고
흘려보내는 것이 가을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화두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