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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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목사 (훼잇빌 영광침례교회)

본문: 출애굽기 33:12-17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며 보게되는 아름다운 꽃들도 이름이 없을 때는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꽃에 이름을 부여하게 될 때 똑같은 ‘꽃’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옛날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름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어릴 때 ‘개똥이’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들도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부인 이런 식으로 많이 불리웠던 것이죠. 자기 자신의 정체성 보다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아이나 키우는 그런 존재로서의 의미가 더 많이 부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똑같은 사람도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서 의미에서 많은 차이를 낳게 됩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흙에서 나온 존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아다마’, 즉 ‘흙’이라는 단어가 아담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창세기 3장 20절에도 보면 아담이 자신의 부인에게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도 보시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고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 그리고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셔서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존재들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그런 존재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친히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나는 이름으로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출 33:12,17).”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몰라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겠습니까? 모세를 ‘의미있는 존재’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의미없이 그저 바람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알고, 기억하고, 함께 하는’ 존재로서 기억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아시는 존재들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아시고 사랑과 은총을 받는 그런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받은 사랑을 가장 가까운 가족, 이웃,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셔서 서로 의미없이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밥만 해주고 돈만 벌어오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의미있는 존재들이 되시기를, 그래서 서로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