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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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가족들 치닥거리에서 벗어나서 한 달을 지냈다. 그렇다고 뒹굴대며 먹고 쉰시간만은 아니었지만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일들로만 바쁘게 지낸
시간들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있으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다. 내가 바쁘게 일상속에서 살아갈때는 포기,라는 것이 참 힘들었다. 조금만 내가 더 노력하면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둥바둥 바쁘게만 살았는데, 그래서 한달간의 한국 방문계획을 잡으면서도 이런저런 근심과 걱정에 편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포기,라는 것을
하고나니 내게 편안함이 찾아 들었다. 어차피 떠나는건데 남은 사람들과 일 걱정을 하면 뭐할 것인가,라고 체념 아닌 체념을 하자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정리가 된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진부한 예일 수도 있지만 나를 비우지 않으면 결코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가 없고 고통이 없으면 삶은 단단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아파보아야 건강이 소중한 것을 알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듯이 떠나보아야 놓는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쉰다는 것은 내일을 위한 충전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았던 조급함과 갈급 때문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았는지가 보인다.

여북해야 쉰다는 것을 미학(美學) 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이번 여행에서 ktx를 탄 적이 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대전역에 도착한 것을 보고 빠르긴 빠르구나,하고 감탄을 했지만 얼마나 빠른지를 차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만 보아서는 가늠하기 힘들었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려고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는 ktx를 보았는데 그냥 눈앞을 찰나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 삶도 이러 했으리라. 혜민 스님의 책 제목처럼 모든 것은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달리고 있는 동안에는 여유를 가질 수도 없고 나를 돌아볼
수도 없다. 내가 나중에,나중에, 라고 미루는 동안에 나를 낳아준 엄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고 기억 세포가 하나씩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보니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를 들을 때는 세상에 게으르기 그지 없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젊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했고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 나이에 깨닫는다.
과거는 지나간 오늘이며, 내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오늘 일뿐이다. 인생의 시제는 늘 현재여야 하고 삶의 중심은 언제나 오늘,이어야 한다는데 우리는 오늘,이 아니라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대비한다고 오늘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느낌이 든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이 보이는 평범한 진리를 잠시 떠나는 것으로 깨달은 나는 어리석지만 참 다행이다.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서…. 쉰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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