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 그 길에 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인용한 시는 학창시절에 배웠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이고 제목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며칠 전에 읽기를 마친 작가 고 박완서씨의 산문집 제목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을 가지고 산다. 먼 과거에서 혹은 어제, 오늘의 일상에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때마다 내가 택하지 않았던 가능성에 대해 아쉬워 할 때가 많다. 예전에 유행했던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개그맨 이휘재가 A와 B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그래, 결정했어’라며 한 가지 길을 택하는 코너를 진행한 바 있는데 개그 프로그램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이유는 매순간순간이 선택의 기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신화와도 같은 얘기를 들어보면 한 순간의 선택이 성공과 실패, 대박과 쪽박을 가르는 순간이었다고 해서도 더 그렇다.
나 역시도 그런 아쉬움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내 길지 않은 과거를 돌이켜 볼때가 많다.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던져올 때면 더욱 그렇다. ‘기자(記者) 라면 언론고시라고 부를 만큼 높은 경쟁률을 뚫고 되었을텐데 왜 미국에 와서 이러고(?) 살아요?’ 글쎄, 나는 왜 미국에 와서 이렇게 사는 것일까? 한 순간의 선택이 좌우하는건 고작 10년 수명의 냉장고인데 50년을 좌우하는 결혼에 대한 결정을 너무 쉽게 해버렸다는 후회로 마음 아파하던 시절도 있었고,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족에게는 내보일 수 없었던 고충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여성인들 한두 번쯤 결혼을 후회해보지 않았으랴. 다만 아직도 지적인 탐구욕이나 나날이 발전해 가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은 많은데 그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아쉬움이 나를 갈증나게 한다. 내가 차용해온 제목의 산문집을 쓴 박완서씨는 내가 꼽을 수 있는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나이 사십 넘어서 여성지로 등단했는데 당시의 우리 문단 현실에선 드문 일일뿐 아니라 습작 과정도 없이 등단, 다작(多作) 작가이면서 베스트 셀러 작가로 유명한 분이다. 여러 아이들을 기르느라 가장 힘들고 지쳤을 시기에 자신 안의 갈망을 썩히지 않고 산고(産苦)의 진통을 거쳐 처녀작 <나목>을 세상에 내보인 작가의 열정과 의지력이 참 부럽다. 고인이 남긴 산문들을 읽다보니 새삼스레 오래전 배운 시도 생각나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새해 첫달이 지나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있는 필자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고 싶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