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높이 들라

0
126

이상현 목사 (랄리 한인장로교회)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 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26)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인해서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높이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들을 누가 창조하였나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여 전쟁 포로로 먼 나라에 잡혀가게 될 것을 걱정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온갖 염려와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고개를 떨구고 한 숨만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눈을 높이 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들 중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알파 센타우리라는 별입니다. 빛의 속력으로 가도 4.2 년이 걸리는, 무려 24조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을 높이 들어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이 최소한 24조 마일 넓어집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 우리의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을 높이 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눈을 높이 들었던 다윗
구약 성경에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 눈을 높이 들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입니다. 눈을 높이 들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은 시를 쓰고 노래하였습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편 19:1-4)
다윗이 밤하늘에 별들과 뜨거운 태양을 가장 많이 보았던 곳은 광야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다윗에게 광야는 한가하게 머리를 식히며 묵상하고 쉬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년 시절 양을 칠 때는 맹수들의 공격으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곳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억울하게 쫓기고 도망치던 곳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광야는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거짓과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었던 치열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윗은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해서 집요하게 추적했던 사울 왕을 단 칼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다윗은 매번 사울을 살려주었습니다. 훗날 자신의 아들이 일으킨 반란군에 쫓겨서 광야로 도망갈 때에 제사장이 법 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라온 적도 있었습니다. 법 궤를 앞세워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반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제사장을 다시 성전으로 돌려보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삼하 15:25)
다윗은 정치적인 싸움에 하나님을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모습이 이처럼 세상을 초월한 사람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눈을 높이 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일투쟁을 했던 청년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어 보면 다윗의 시와 다소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 시집의 대표적인 ‘서시’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살다가 일본에서 옥사했지만 시인은 일본 사람을 비난하거나 나라를 배신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시를 짓지 않았습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시인은 오히려 ‘눈을 높이 들어’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에 바라보았습니다. 시인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겠다고 하며 바라보았던 하늘은 그리운 조국의 하늘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을 뜻하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쫓겨 다니던 다윗도, 일제 강점기에 옥사한 윤동주 시인도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내려놓고 눈을 높이 들어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시선
눈을 높이 들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시선’라는 찬양을 불러봅니다.
내 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김명선 작사, 작곡)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속상하고, 불안하고, 막막하고, 억울할 때 일수록 눈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순간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28)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면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고 머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들고 ‘눈을 높이 들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게 되며 눈앞에 어떤 어려움도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눈을 높이 들어’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권세와 강한 능력을 체험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