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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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목사 (듀랄리한인장로교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6, 7절)

1. 마음에 비춰진 빛

오래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 승강장 안전벽에서 본 이승철 시인의
‘마음하나 등물 하나’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씩 등불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욕심 때문에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이웃을, 친구를, 동료를
사랑하는 가족 부모와 형제까지도…

싫어지고 미워져서, 멀어지고 분노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여 마음이, 영혼이 어두워집니다.

사랑의 등불 용서의 등불 화해의 등불
이해와 포용의 등불 베풀 수 있는 여유의 등불까지….

우리들의 마음에 모두 하나씩 밝고
고운 등불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그 등불 숨기지 말고 머리 위에 높이 들어
주변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그 불빛 주변을 밝혀
남들에게 밝음을 줄 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어두움을 몰아내어
행복의 불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퇴근길에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음속의 어두움’을 몰아냈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은 너무나 막연한 소원으로만 여겨집니다.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분노와 같은 마음속의 어두움을 몰아내어 주는 행복의 빛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을’ 마음에 비추셨다고 자신 있게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소개하는 ‘그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양과 달이 만들어지기 전 천지창조의 첫째 날 하나님께서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는 모든 창조물을 밝히는 빛을 창조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온 우주를 밝히는 이 엄청난 빛조차 훗날 죄로 인해서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까지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어두워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비춰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이 빛을 생명이라고 하며 이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생명의 빛이 비춰짐으로 사도 바울은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고후 4:8-9) 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때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우리의 마음에 생명의 빛이 비춰집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체포되어 밤 늦게까지 심문받으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는 뭇 사람들의 질문에 당황해서 그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며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 부인했을 때 전날 밤 예수님의 경고대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이 계신 쪽을 바라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어두워진 마음에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생명의 빛이 비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가서 통곡하며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될 때 죄로 인해서 어두워진 우리 마음이 밝아지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역사하는 순간입니다. 생명의 빛이 아침 햇살과 같이 어두운 우리 마음에 비춰지게 됩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어두운 세상이 밝아오고 햇살의 따스함이 느껴지듯이 세상의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어두워진 마음이 밝아지고 생명의 따스함으로 가득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조르주 루오 (Georges Rouault)라는 프랑스 화가는 원래 야수파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난폭하게 휘두르는 붓놀림은 사회의 어두움을 정죄하는 듯했고 격렬한 분노와 절망감 고발심과 격정적인 분위기가 그림에 그대로 표출되었습니다. 루오는 타락한 창녀, 가난에 찌든 어릿광대, 부패한 재판관, 거만한 부자, 늙은 왕과 같은 어두운 소재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어느 날부터 루오의 그림에 온화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게 되면서였습니다. 루오가 그린 ‘거룩한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 그림이라는 극찬까지 듣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괴로울 때는 괴롭게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안 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 집사님이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설교하며 그들의 죄를 알려주었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노에 가득해서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정죄하고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하고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저서인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 선집’에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셨던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아버지의 형상이시요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 눈물 어린 얼굴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 얼굴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얼굴도 주님의 얼굴로 변하고 우리 교회의 모습도 주님의 얼굴로 변할 때까지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 감히 주님의 얼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을 앙망하게 해 주소서.

우리나라 초대 선교사요 성서공회에서 오래 섬기신 최찬영 목사님이 태국 선교사로 파송 되기 전에 한경직 목사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한목사님의 건강이 안 좋으셔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사모님이 대문에서 한목사님이 집에 안 계시다고 말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내곤 했는데 선교사님도 여지없이 거절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담 넘어 목사님의 사택을 바라보았는데 2층 발코니에서 한목사님이 활짝 웃고 계셨다고 합니다. 초대 선교사로 태국으로 파송된 최찬영 목사님은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힘들 때는 한경직 목사님의 웃음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으시곤 했다고 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시며 온 우주를 밝히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생명의 빛을 질그릇과 같은 우리 마음에 담아 주십니다. 그 빛을 ‘숨기지 말고 머리 위에 높이 들어 주변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행복의’ 빛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이 더 없이 어두워질 때가 있습니다. 뜻대로 안되어 실망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슬프고 가슴 아픈 일도 만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생명의 빛이 여러분의 어두운 마음을 환히 비추게 되시기를 또한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담아 주신 이 보배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