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Reset 2025
새해라서 가슴 설레이고, 새해라서 어떤 계획을 세우려는 낭만(?)적인 시절은 이미 저에게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연말이 오면 한 해가 이렇듯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또 올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를 스쳐 지나갈,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만이 가득한, 참으로 삭막하기가 그지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우리들은 저마다 각각의 방식으로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화려하게 또 어떤 이들은 간단하거나 혹은 소박하게, 저 역시 이제는 거창한 트리는 생략하고 미니멀리즘에 맞는 최소한의 장식으로 기분만 내보지만 아무리 최소한의 장식을 한다고 해도 데커레이션을 하려면 어딘 가에 보관해 놓은 장식품 박스를 꺼내 와야 합니다. 박스를 열어 조그만 소품들을 꺼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란 이 보관 박스와 같겠구나.’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물건을 보관할때 마구잡이로 박스에 집어넣어서는 제대로 보관도 안 될뿐더러 많은 물건들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나름 머리를 써서 공간 활용을 해야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고 그만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새해의 계획이란 거창한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첫날부터 마음정리를 효율적으로 잘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행동에 옮기려 할 때 많은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시행착오 과정을 줄이는 것이, 도달하기 힘든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실속 있는 새해 계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하는 컴퓨터나 휴대폰도 쌓여 있는 데이터들을 정기적으로 비워줘야 내가 원하는 프로세싱 스피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이러할 진데 우리들은 비우고 버리기는커녕 해가 거듭될수록 미처 지우지 못한 온갖 상념들로 마음속 저장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래서 마음 밭이 어지럽고 어수선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비우지 못하면 채울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냉장고를 정리할 때도 정리하고 버려야 또 채울 수 있습니다.
얼마전 아이들과 함께 Escape Rooms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게임 룸 같은 곳인데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안에 문제를 풀어야 밀실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컨셉을 가진 테마 룸에서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에 팀웍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상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여기에서도 난해한 문제를 만나서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면 전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다시 상상력을 동원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물론 저는 아들들이 아니었다면 혼자 힘으로는 절대 탈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잘못된 판단인 줄 알면서 돌아가기 귀찮아서 계속 간다면 가고자 목표했던 곳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입니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계획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했다면 그것을 인지하고 과감하게 리셋(Reset)을 하는 용기도 필요한 듯합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고…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지만 새해의 첫날이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첫날 설, 입니다. 똑 같은 하루지만 늘 첫날 같은 마음으로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들 가정에 늘 웃음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