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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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가 올 3월 7일 공개한 16부작 한국 드라마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영어 제목은 . 인생에서 고난을 맞이했을 때, 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두 남녀 주인공이 고생을 극복하고 살아나가는 일대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도 많고 출연진들의 명연기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명품 드라마입니다.
196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이 우리네 부모들의 삶과 맞닿아 있어 때로는 향수를, 때로는 부족하지만 넉넉했던 순박한 삶의 모습들이 잊고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화제작이기도 합니다.
전 사실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슬픈 드라마는 더더욱 피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전 눈물이 참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남들은 눈이 커서 눈물이 많은 거라고 하지만 눈이 큰 다른 친구들이 눈물이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은 근거 없는 말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어 눈물이 많아지고, 여자들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어 눈물이 없어진다는데 눈물에 관한한 전 예외인 편입니다. 그래서 전 이 드라마를 일부러 보지 않고 있었는데, 남편이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케어를 위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보면서 또 혼자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엄마 우리 아빠의 고달프고 애틋한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혹은 우리 아이들 세대처럼 자녀들에게 애정이 담긴 사랑의 표현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그 것은 그 분들이 매정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시절이 그랬고 최소 3,4명 이상의 자녀들을 낳아 기르려는 그 분들의 생활이 너무 팍팍했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의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잊고 있었던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게는 다정한 아빠가 있었다. 아빠에게는 다정한 딸이 없었다. 엄마에게 다정해 달라는 그 다정한 당부가 아리게도 남았다. 우리는 아빠를 영원히 가진 것처럼 굴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날 에야 다급한 사과들을 쏟아냈다. 그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 노라고…
소년의 일생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일평생 그 소녀의 세상을 지켰다. “괜찮았어..? 나랑 산 세월이 괜찮았어? “ “더할 나위없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 “일생에 각인한 한 사람을 그렇게 담고서 아빠는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시청자들을 울렸던 드라마 속의 대사들입니다. 한 사람의 여자였고 한 사람의 남자였을 우리 엄마와 아버지. 그 분들 사이에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지지고 볶는 시간이 날실과 씨실처럼 애증으로 얼켜있었겠지만 우리들에게는 무한했을 사랑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며칠 후면 엄마가 제 곁을 떠나가신 지도 6년이 되어갑니다. 지금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 밤이 생각납니다. 아직까지도 후회가 되는 일은 그때 엄마 귀에 수화기를 대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순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힌다는 말을 기억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엄마, 낳아줘서 고마웠고 잘 길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드라마 속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출연자들의 대사를 듣다 보니 눈물이 흐르고 엄마에 대한 회한에 또 눈물이 흐릅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만 마른 나무에 꽃을 피우는 생명의 달이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을 잘 이겨낸 모든 생명체에 속삭입니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