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에 대한 고찰(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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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고찰’ 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뜻이지만 저는 한
가지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삶의 잔가지들에 대한 생각을 잡담처럼 풀어내고자
고찰이라는 단어를 빌려 왔습니다.

저도 많이 경험한 바이긴 하지만 최근 지인이 경험한 사연들을 들으면서, 사람 사는
세상은 참 비슷하기도 하고 인간들의 심리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공감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혹시 ‘또래집단’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사실 흔하게 쓰이는 말인데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이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검색을 해보면 또래(peer)란 연령, 성별, 학년에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비슷하며, 사회적으로 동일시되어 함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또래란 대등한 위치를
가진 동반자, 사회적으로 동등한 사람, 또는 일시적들이라도 행위의 복잡성 정도가 유사한
수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조건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슷한
유형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 속에 있을 때 편하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한국의 사회생활은 또래집단에서 시작되고 또래집단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비슷한 조건에서 이루어집니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직장 등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조건들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특별히 뛰어나거나
뒤쳐지지 않는 이상 무난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민사회는 각기 다른 성장 환경과 교육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한국의 또래집단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내적인 갈등이 심심치 않게 야기됩니다. 예전에
속했던 집단에서는 일상적이었던 말이나 행동을 하면 잘 난체하는 것이 되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쁘면 예쁘다고, 똑똑하면 똑똑하다고,
잘하면 잘한다고 인정하면 쉬울 일을 예쁜척한다고, 똑똑한 척한다고, 잘난 척한다고
뒷담화를 한다고 지인은 너무 억울해하고 속상해 했습니다. 어리면 삶의 깊이가 없어서
그런 가보다, 라고 이해라도 해보겠는데 손주까지 본 사람들이 그러는 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인에게 정말 흔한 말인 ‘나이 먹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들 나이에 예쁘면
얼마나 예쁠 것이며 학벌이며 잘나가던 과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리고 설령 내가
타인의 그것이 못마땅해도 그런 것들은 그 사람의 지나온 과거이고 지울 수 없는 개인의
역사입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들이 남에게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돈 자랑, 자식 자랑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에게 인색한 것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하찮은
감정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기대수명, 혹은 예측가능한 평균수명이 최소 백
세로 늘어난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며 지낼까, 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자연을 보면 답이 있습니다. 꽃은 서로 뽐내되 시기하지 않습니다. 각기 다른 형태와
다양한 색상들이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자연은
겸손합니다. 물은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나무들은 위로 성장하되 잎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언제 위로 갈지를 알고, 언제 잎을 떨구야 하는지를 압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 속에서 또다른 낙엽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계절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보며 저는 오늘도 배우고 깨닫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또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Adi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