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삶에 대한 짧은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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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알지 못할 때 글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삶이란 쓰일 수 없는 것이다.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시인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입니다. 뼈저리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고 모를 때는 온갖 잘난 척도 할 수 있고 호기(呼氣)와 치기(稚氣)를 넘나드는 만용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나서 혹은 알고 나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경험을 우리는 일상에서 많이 겪습니다.

27일 현재 시간 동남부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헬렌의 피해로 44명이 사망했으며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120만 명, 90만 명이 정전의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저희집 역시 27일 오전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면서 정전이 되였었습니다. 다행히 오래 되지 않아 복구되었지만, 우리가 아무리 A.I. 시대를 살고 첨단 과학문명을 누리고 살아도 자연재해 앞에는 더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정전된 시간은 다행히 아침이었고 덥지도 않았고 전기를 잃은 시간도 길지 않아 괜찮았지만 만약에 밤이었는데 어땠을까요? 칠흑 같은 어둠속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끼며 무더위까지 느꼈다면, 그리고 허리케인이 몰고온 홍수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어뗐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유례없는 폭염이 기록됐던 2022년은 유럽에서만 6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올해 2024년의 지구 표면 온도는 1850년 이래 가장 뜨거웠다고 합니다. 올 여름은 재난 수준의 폭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었습니다. 한국을 올 여름에 다녀오셨던 분들이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올 여름의 더위가 얼마나 대단 한지에 대해 듣고 겪으셨을 겁니다. 습도도 높아 9월까지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로 에어컨을 틀고도 힘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으죠.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여름만큼이나 올 겨울은 매우 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가을이 없이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후 전문가의 전망입니다.

지난 5일 환경재단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24 세계 환경위기시계’ 가 위험 수준인 9시 27분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환경위기시계는 환경재단이 일본 아사히글라스재단과 함께 국가별 환경오염에 따른 인류생존의 위기 인식정도를 조사해 시간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정에 가까울수록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국시계는 ‘매우 위험’ 구간인 9시 11분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대비 17분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이번에 발표한 ‘2024 환경위기시계’ 는 전 세계 128개국 2093명의 환경•지속가능발전•ESG 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설문조사한 결과로 지역 및 국가별로 가장 시급하게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 환경 분야 데이터를 가중 평균해 산출되는데 환경 분야별 가장 시급한 문제로는 ▲기후변화(30%) ▲생물다양성(17%) ▲토지 이용-광산개발, 산림벌채 산업폐기물 매립(9%)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막지 못한다면, 온실가스 저감 조치를 위한 범지구적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극한의 더위가 불러올 죽음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생활방법으로 살고 있어도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 지구인입니다. 우리들이 체감하는 온도도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4계절을 모르는 세대들이 점점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도 봄과 가을이, 마치도 우리 신체에서 퇴화한 꼬리뼈 같은 흔적으로만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우리가 아는, 낭만적인 가을도 ‘라떼는 말이야’로 반추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하나 둘씩 포도를 뒹구는 낙엽을 보는 만큼이나 쓸쓸해지는군요. 노스 캐롤라이나에 거주하시는 독자분들 가정에는 허리케인의 피해가 없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