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때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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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이따금 글이 생각처럼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써야겠다, 라는 생각은 있는데 머릿속이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좀처럼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거죠. 마치도 업데잇이 안된 GPS처럼 목적지 근처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가실까요? 이번 달 원고도 그랬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꾸 막히는 느낌, 시작을 이렇게 했으니까 마무리를 저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때문에 탈고가 쉽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이런 느낌이 들면 글을 쓰는데 대한 회의가 밀려옵니다. 이름 석 자 달고 쓰는 글을 이따위로 써도 되나, 이제 그만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 자괴감과 복잡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자판 위를 오가야 할 손가락이 허공을 맴돕니다. 사실 전 10분 전 원고를 탈고해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내고나서 드는 감정은 후련함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로 하여금 다시 자판을 두드리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보이는 제 치부일 수도 있지만 솔직한 제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한 달 쉬는 것도 한 방법인데 혹시라도 제 글을 찾아보실 독자분들께 대한 예의가 아닌듯 싶어 글을 썼지만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아닌 이 글을 덧붙이며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고 보이는 이유는 글 말미에 쓴 내용(부활)처럼 이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나중에 좀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제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도, 의학도, 물리학도, 인문학도 발표될 당시에 아무리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일으켰더라도 수정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만큼 완벽한 것은 없었듯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우리는 지나간 하루하루의 시간에서 수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을 맞습니다.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며 살아왔지만 지나고보면 옳은 것도 있고 혹은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과거를 반추(反芻)해서 그 순간의 결정을 곱씹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는 합니다만 우리들은 아니 저는 습관처럼 선택의 기로에 섰었던 과거의 일을 되새김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은 주로 어떤 결정을 내렸던 과거의 결과물인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겠죠. 그래도 어떻게 보면 인생은 과거에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수반하기는 하지만 상상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결과는 모르겠지만요.
얼마전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과 더불어 미국의 3개 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겨울 폭풍으로 인한 자연재해를 겪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로 인해 전기와 물이 끊기고 이로 인해 생존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불편함을 겪고보니 인공지능(AI) 이 발달해서 많은 분야에서 상용화되고 있고 자율주행 전기차에 드론을 이용한 무인 배달이 가능한 현대의 첨단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신(新) 문물도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생존의 기본이랄 수 있는 물이 끊겨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보다보니 역시 우리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하고 더없이 겸손해져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 크리스천인들은 2월 17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기점으로 사순(四旬)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맘 때면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십자가의 고통 없는 부활의 영광은 없습니다. 빛은 어둠이 짙을수록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씨앗은 땅에 떨어져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싹을 틔웁니다. 죽을 것 같은 산고(産苦)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있고 내 안에 가득차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비워야 이타심(利他心)과 깨달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이고, 계절의 시작인 봄을 기점으로 이어지는 모든 시간들이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것들로 채워지기를 동장군(冬將軍)의 혹독했던 기세만큼이나 다가올 봄이 더욱 찬란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