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ㅇㅇ다운 세상
요즘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내로남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스개 같은 말이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나는 되고 너는 안되는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인 일’은 또 얼마나 많은 지, 뉴스를 보다 보면 기가 막힐
때가 참 많습니다. 언젠가도 밝힌 바 있지만 제 정치 성향은 우도 좌도 아닙니다. 그저
세상을 살아온 제 잣대에 비추어 옳다 그르다, 를 판단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를 가지고 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물론 이 지인은 일명
태극기 부대, 로 불리는 극우 성향입니다) 솔직히 저는 놀랐습니다. 전 제 나이가 젊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소위 말하는 꼰대 기질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지인 역시 제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얼마나 이분법적인 사고(思考)로만 보는지, 양보 없는 흑백
논리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검은 색과 흰 색 외에도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물을 보는 눈이나 생각도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생각이 다르면 반대파로 몰아 부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르다(different)는
틀리다(wrong)는 뜻이 아닙니다. 한 날 태어난 쌍둥이도 조금씩 다르게 생겼는데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똑같은, 획일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와 뜻을 함께 하지 않으면
적(敵)으로 간주합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어려운 시기에 월급을 삭감하면서까지
회사측의 고통에 동참했다면, 회사가 정상화되어 흑자를 기록하는 시점에서는 노동자들의
월급을 정상화시켜 주는 것이 전 맞다고 봅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좋게 볼 수 없지만,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 회사측을 생각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수용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제 기준의 잣대입니다. 권리와 의무에 정치적인 불순물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우리말 중에 ‘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법적으로 ‘~답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입니다. 특히
‘~답다’ 앞의 명사가 사람일 경우 ‘~의 자격이 있다’ ‘~의 신분이나 특성에 잘 어울린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사람다운’ 행동을 해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하며 종교인은 ‘종교인 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 같은 거죠. 사람이 동물처럼 생각없이 살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 소리를 듣고, 정치인이 국민의 종복(從僕) 노릇이 싫어 군림하려고
들면 나라의 위상이 땅바닥에 곤두박질 칠 것이며, 종교 지도자들이 돈이나 세상 것을
탐하기 시작하면 교회의 신자들은 다 떠나고 말 것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의 영향 탓인지
친 혈육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제자를 이성으로 보는 성(性) 이상증후자들도 많아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데 이런 ‘사람 답.지.’ 않은 행동은 스스로를 ‘개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복(公僕)으로 뽑아 놓은 정치인들이 민생과 국가 안보, 경제는
아랑곳없이 여야를 막론하고 우왕좌왕하는, 전혀 ‘정치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주위를 보면 적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이 더이상 예수님을 본받는 청빈의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교인 답.지.’ 않은 그들은 신자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지, 길을 잃은 느낌이라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볕 더위가 날마다 기승을 부리지만 이제 중복(中伏)도 지났고 얼마후면 말복 그리고 가을
바람 살랑대는 처서(處暑)가 다가올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더위는 주어진 바에 충실한
‘여름다운’ 날씨였을 것일테지요. 저도 오늘 지금 제가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그 자리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해봐야 할 듯싶습니다. 모두들 여름 더위에 건강
챙기시기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