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변화산 vs. 겟세마네’

0
727

전광훈 목사 (그린스보로 은혜로교회)

본문: 마가복음 14장 32-38절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보니 3박 4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모두 다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 20년 전에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었던 5명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함께 휴가를 보냈습니다. 뜨거운 햇살과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다운 숲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또 먹으며 즐거워합니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대학 시절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함께 공부하고 울고 웃으며 함께 신앙을 나눴던 추억 이야기에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아내들끼리 따로 모여 각자의 삶에서 가지고 있는 아픔과 고난을 나누며 눈물을 쏟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고 있는 친구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 마음에서부터 절로 흐뭇함이 샘 솟았습니다.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별들은 우리가 모인 자리를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교제를 통해 깊은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그 순간이 마치 잠깐의 달콤한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는 모습을 봤었던 제자들의 마음도 저와 비슷했을까요? 아니 그것보다도 훨씬 더 행복하고 좋았나 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눅 9:28) 산에 오르신 시각은 아마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은 산에 올라와서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습니다(눅9:32). 그런데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어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는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가 그 곁에 함께 서 있는 장면을 보게 되니 자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니 잠깐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온전히 깨어나’게 되었습니다.(눅9:32). 베드로는 얼마나 황홀했는지 “여기 있는 것이 너무 좋으니 내가 이 세 분을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할 정도였습니다.(눅9:33)

그런데 예수님은 변화산에 데리고 가셨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들을 겟세마네 동산에도 똑같이 기도하기 위해 데리고 가셨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세 사람이 여기서도 피곤함을 못 이기고 잠들어 버렸다는 거에요.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시면서 이 세 사람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엎드린 채로 기도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졸음을 도저히 못 이깁니다. 주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오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시는 데도 못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데 세 번 모두 제자들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질 만큼 간절히 기도하고, 천사들도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할 만큼 절박한 기도의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데, 제자들의 눈은 여전히 천근만근 무겁기만 합니다. 변화산에서는 자동적으로 번쩍 떠졌던 그 눈꺼풀이 겟세마네에서는 이보다 더 무거울 수 없습니다. 지금이 얼만큼 절박한 순간인지, 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순간인지 알지 못하니 ‘온전히 깨어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체포되는 순간에 이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변화산으로 데려가기도 하시고 겟세마네로도 데려가십니다. 내 삶이 변화산처럼 기쁘고 황홀한 순간에 있을 때에는 굳이 깨어 기도하기 위해 몸부림 치며 자기를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많이 피곤하지? 좀 자고 있어.’라고 말해도 못 잘겁니다. “할렐루야! 여기가 좋습니다!”라는 찬양의 고백이 절로 나올 거에요. 하지만 내 삶이 겟세마네에 있을 때에는 깨어 기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바로 옆에서 예수님이 절규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에도 잠자고 있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기가 힘겹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혼이 시험에 들지 않을 만큼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변화산이 아닌 겟세마네에서 드러납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은 예수님에게서 광채가 나는 변화산이 아니라 예수님이 힘없이 체포되시는 겟세마네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위에서 초막을 지어 계속 머물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내려오자 마자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자며 사명을 감당하는 고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변화산에서의 시간이 마치 황홀한 꿈처럼 느껴지는 것은 주님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걸어가는 고된 일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로나 팬대믹으로 인해 많은 성도님들의 삶이 힘겨운 상황 가운데에 있습니다. 팬대믹이 장기화되면서 더 많은 교회들이 흉년의 시간을 직면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십자가 고난을 앞둔 겟세마네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울고 웃는 고된 일상의 삶을 넉넉히 감당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더욱 힘써 깨어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여 흉년 속에서도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언젠가 이 나그네의 삶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에도 지나온 모든 인생이 마치 잠깐의 꿈처럼 느껴질까 궁금합니다. 내 인생길이 때로는 고되고 힘들기도 했지만 주님과 함께 했기에 행복하고 황홀한 꿈만 같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