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당신에게
김중규 목사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
본문: 왕상19:1-8
화려한 무대 뒤 스타들이 느끼는 공허감과 무기력감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인 영화배우 이병헌도 인기가 있을 때 무대 뒤에서는 세상에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 작은 화장실에 갇혀있는 느낌과 공황 장애를 겪었다고 TV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사는 것 같은 우리들의 무대 뒤도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 본문의 엘리야 선지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갈멜산이라는 사역의 무대에서 화려한 휘날레를 장식했던 선지자입니다. 450명의 바알 선지자 와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를 제압합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 기도합니다. 비가 쏟아지자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 무려 마라톤 구간에 해당하는 거리를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전속력으로 달려나갑니다.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19:1-2) 기가 죽었을 것 같은 왕비 이세벨은 오히려 기세가 등등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귀의 진도 견고함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셔도 기득권 세력인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꿈쩍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했음을 볼 때 엘리야가 처한 현실과 흡사합니다.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 형편을 본 엘리야는 도망합니다. 1. 영적 거장도 달아나고 싶을 때가 있다. 정신과 의사들의 눈에는 엘리야의 증상이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우울증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은 사역에도 막상 아무 성과나 열매나 진척이 없을 때, 이세벨이 바짝 낮아져서 하는데 오히려 기세 등등하여 공갈 협박을 해 올 때, 답이 없다고 느껴 지고 끝이 안보일 때 우리는 지칩니다. 유별난 열심도 아무 소용없을 때 우리는 지칩니다. 사역을 접고 싶고, 삶마저 접고 싶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인 모세, 요나, 예레미야, 욥도 그러하였습니다.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2. 자상하신 하나님이 지친 우리를 어루만지신다. 하나님은 “네 아픔을 다 안다. 고생스럽지, 얼마나 힘드냐?” 하시며 지친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꾸중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주님 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 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5절의 ‘어루만지다’는 히브리어로 ‘효과가 느껴지게 토닥거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울로 긴장되어 있고 뭉쳐있는 우리 근육을 풀어주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반드시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중요한 건 사역이 아니라 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맥반석 구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hot stone 임)과 물 한병(초정리 광천수?)으로 육신을 보양하십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위해 손수 마련하신 식탁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식사입니다. 옆에 지쳐있는 분들이 있으면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하십시오. 식사 대접은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의 일환입니다.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이 엘리야의 원기를 회복시키셔서 호렙산까지 가게 하십니다.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을 엘리야 앞에 보내셨지만 거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3. 세미한 소리에로 향하게 하신다 앞의 세가지는 마치 엘리야의 이전 사역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세미한 소리의 정체에 대해 성경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우리의 묵상으로 남겨 놓으십니다. 바람과 지진, 그리고 불과 세미한 소리를 대비해 보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상에서 소리에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강력한 것에서 잔잔한 것으로, 금방 사라지는 것에서 여운이 계속 남는 것으로 전향하기를 원하십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아람 왕은 이스라엘을 괴롭힐 사람입니다. 예후는 오므리 왕조를 심판할 왕입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선지자입니다. 하나니은 엘리야로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세미한 소리는 세우는 소리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초기에는 바람, 지진, 불 같은 사역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시면서 12제자를 조용히 세우는 일을 하신 것을 봅니다. 사역의 무게 중심을 세미하게 세우는 쪽으로 옮기셨습니다. 엘리야도 비중 있는 사역, 심도있는 사역에로 눈이 열리게 하십니다. 세미한 소리를 들으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엘리야는 온전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삶에 지쳐 달아나고 싶을 때에 하나님의 어루만지심과 재충전을 받으시고 세미한 소리에로 향하셔서 결국은 더 비중있고 심도있는 삶과 사역에로 나아가심으로 온전히 회복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