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차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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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열사모 서신]

얘들 아!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린 지난 겨울이 입춘을 밀어다 놓고 떠났지만
아직은 따뜻한 자리와 따뜻한 국물이 훨씬 더 좋아지는 계절이다.

지난 겨울은 멀리서 보내온 대추를 다려서 겨우 내내 대추차를 마신 덕분으로
감기는 물론 코비드까지 거뜬이 이겨낸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시나무 같은 대추 나무에도 연두색 작은 열매가 달릴 것이며
어느 날부터 붉은색으로 화장을 해가며 점점 튼실하게 자라다가
한 여름 폭양아래서 검붉은 초콜릿 색으로 통통하게 익어갈 것이다.

제철 대추를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단단한 씨를 빼내고 씹었던 꿀맛처럼 달고 부드러운 육질 맛에
한 두개로 끝낼 수 없는 대추 맛의 유혹을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잡 새들이 입을 대기 전에 따서 또 다시 여러날 태양 아래 구워지는 대추의 몰골은
정말 가엽게 도 점점 더 쪼글 쪼글 해지면서 윤기 흐르던 모습을 잃어간다.

잘 말려진 그 못생긴(?) 대추가 인삼, 생강, 계피를 만나면
감기 예방과 허약한 사람에게 좋은 보약이되는 것이다.

잘 익은 대추가 전혀 다른 것들과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어울려서 그 기능이 달라지기 까지는
눈보라 속에 엄동설한을 견뎌내고, 가시 사이 사이를 비집고 터져나오는 고통이 있었으며,
한 여름 폭양아래서 익어가야 했고, 온갖 새들의 노략질에서 살아남은 후에도,
따가운 가을 햇살에서 구워지는 과정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러하고도 대추는 또 한번의 죽음으로 내 앞에 한잔의 차가 되어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에
‘늙어가지 말고 잘 익어가는 것’은 젊어 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대추에게서 배우게 된다.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늙어버린 것이 아니거든!?
나도 너희들처럼 푸릇 푸릇 젊은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이런 모습으로 와 버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염치없이 나는 대추차를 마시고 있다.

2022/3-25.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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