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란 삶의 자양분입니다
[황명숙 수상] 이번달도 여지없이 독촉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내일 모레가 신문 인쇄일이라는 알림이지만 그 말은 곧 ‘원고 왜 안 보내니’라는 뜻입죠. 참 이상도 합니다. 저는 뭐든 미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숙제도 미리 끝내야 마음이 편하고, 급하게 나가다 가도 싱크대 안에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씻고 나가야 하는 성격인데 왜 신문 컬럼은 미리 써 놓지를 못해서 편집자의 애를 태우는 건지… 변명을 하자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벌써 월말이 다가온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 정도로 바쁘게 사는 탓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드니 강박관념에서 풀려나고 싶다는 생각의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변명 같은 생각도 해봅니다.
며칠 전 회사 미팅이 끝난 후 동료들과 이야기 끝에 주식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 일이 있습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주식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뜻밖이기도 했지만 은퇴를 앞두고 노후 준비를 하려고 애쓰는 저의 거울을 보는듯 짠했습니다. 저도 주식을 시작한지 어느덧 4년차가 되었습니다. 주식이라고는 한국에서 증권사에 위탁 투자를 맡긴 것이 전부인 제가 은퇴 계좌인 Roth IRA를 알게 되고 남편과 저의 계좌를 개설해 나름 야심차게 시작을 한 것이 2021년초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는 동네 개가 주식을 해도 돈을 번다는 시기였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계좌 개설한 다음날 7백 불이 오른 것을 보고 제가 투자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활황기 주식장의 끝물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날마다 돈이 사라지는(?) 기적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제가 샀던 주식들은 구글이나 아마존, 메타 같은 우량주가 아닌, 이사람 저사람이 펌핑하는 잡주로 이미 다이소같은 잡화점을 차린 상태여서 그후 닥쳐온 팬데믹을 겪고 보니 소형차 한 대 값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8,90% 인 주식이 여럿에 어떤 주식들은 상폐(주식시장의 상장이 폐지되는)까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가까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이제부터는 원금 회복을 목표로 투자해 보겠다’고요. 참 이상한 것은 아끼고 아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날렸는데 겁은 나지 않더라고요. 속은 쓰렸지만 잃은 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이너스인 잡주들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언젠가는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고 팔아버리고 나니 허무하기는 했지만 시뻘건 계좌를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은 편하더라구요. 그리고 다시 새로운 주식들로 계좌를 재정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돈을 엄청스레 벌었다는 말은 아니고 제가 목표했던 ‘잃은 돈 찾기’에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저는 주식 새내기이지만, 돈을 엄청 잃은 경험을 했다가 본전을 찾고 보니 쓰라리었던 제 경험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이상하게 돈을 날렸을 때도 두렵다는 감정보다는, 돈을 잃으면서 배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저를 더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처럼 돈을 계속 벌었다면, 저는 위기에 대처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주식시장을 쉽게 보는 자만감에 푼돈 벌고 큰돈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들처럼 저는 초기에 넘어져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건 우리들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가 없는 주식은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 것처럼 서로 상처를 주거나 편하지 않은 관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고 정리해야 그나마 추억이라는 앨범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르신들은 특히 야외 활동을 삼가시고 더위 잡숫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건강 챙기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