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맺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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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범 목사 (훼잇빌 아름다운교회)

본문: 요 15:1-11
사람들은 누구나 영롱한 꿈을 꾼다. 마음껏 그 꿈을 펼치며 살고 픈 욕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김승희 시인의 “꿈과 상처”의 시구처럼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로구나”를 자조하듯 연발한다.
진정 꿈과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함이 아니다. 도리어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구원을 얻고 풍성한 열매 맺음과 함께 기쁨이 충만한 삶이다. v.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v.11b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이다.
누구도 깰 수 없는 예수님의 언약이다. 우주적 보장이다. 크리스천은 열매 맺음의 예수의 꿈을 함께 꾸고 삶 속에서 성취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약속하신 의미 있고 열매 풍성한 삶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취할 믿음은 행동은 무엇인가? 본문이 답이다.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설교(13장~ 17장) 가운데 일부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을 포도원 농부, 자신은 참 포도나무, 그리고 제자들을 가지로 말씀함으로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위한 유기적 관계가 무엇인지, 그를 위한 우리가 취할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셨다.
먼저, 영적 가지치기(pruning)이다. 그것이 답이다. 필수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확실한 약속인 열매 맺는 삶을 성취한다. 포도나무의 존재 의미는 관상용, 땔감용, 향내, 혹은 썩혀서 거름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오로지 열매다. 열매를 얻고자 함이다. 열매 맺음이 포도나무의 존재 사유다.
겉보기에 넝쿨이 무성해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실속 없는 나무다. 유명무실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제거함이 마땅하다. 즉 열매 맺음을 저해하고 역행하는 가지를 처냄이 하나님의 뜻이다. v. 2a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열매 맺음은 우연인가? 아니다. 어떤 노력 없이 저절로 주렁주렁 과실을 맺히는 가지는 없다. 예수님은 당시 포도나무 농사법을 들어 풍성한 포도 열매를 얻기 위해 농부들이 건기인 봄철과 포도 수확 후 다음 해를 위해 또 다른 가치치기를 하듯 영적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썩은 가지를 잘라내는 영적 가지치기를 강조하셨다.
잘못된 영성과 인격과 동기의 썩은 가지는 잘라내야 한다. 깨끗하게 하지 않고 얻을 열매는 없다. 선택이 아니다. 의무다. 이른바 참된 영성을 위한 거룩한 권리이자 의무다. 바울은 그 영적 가치 치기의 대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
요약하자면 세상이다. 내 안에 뿌리 박혀 있는 세상 정신이다. 악한 본성’이다. 그것을 솎아내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v. 6b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 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의 비극적인 운명에 놓여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지치기는 무엇으로 할까? 하나님의 말씀이다. v.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오늘 당신에게 가지치기의 의지와 주의 말씀이 살아있는가? 유효한가?
‭‭‬‬둘째,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음이 필수다. v.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의 비유는 명료하다.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납득의 언어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만이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는다.
여기서 ‘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노’다. 뜻은 ‘머물다’, ‘남다’ 사복음서에 40회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만 무려 27번, 그중 15장에 11번이나 집중적으로 나온다. 그것은 단순히 ‘머묾’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붙어 있음, 중단 없는 붙어있음을 뜻한다. 어떤 경우와 상황과 처지 속에서도 예수님께 계속 붙어 있는 것, 그 거함이 열매 맺음의 답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포도나무와 같은 꿈을 꾸고, 포도나무(예수)가 바라는 영광에 대한 열망을 함께 소유함을 뜻한다. 또한 가지의 모든 양식의 공급처가 오직 포도나무요, 그 양식으로만 사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풍성한 열매 맺는 가지됨의 보장이 오직 포도나무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온 힘을 다해 주님께 붙어있을 때 우리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 열매를 맺는다. 영적 싸움은 붙어있는 싸움이다. 예수님께 붙어 있느냐, 아니냐? 계속 머무느냐, 세상으로 돌아가느냐의 치열한 싸움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은 꿈과 바람과 약속은 분명하다. 과실을 많이 맺는 삶이다. 열매 풍성한 삶이다. 그 우주적인 선명한 하나님의 뜻과 원함을 막을 자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다. 영적 가지치기와 예수님 안에 거함이 오직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