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6월의 상념(想念)
현충일과 6.25 전쟁일 등이 있는 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뜻을 가슴에 새기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의 공훈과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와 자긍심 고취, 국가보훈대상자를 예우하는 풍토 조성 및 국민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자 각종 행사와 사업을 추진하는 달로서, 1963년 처음으로 지정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현충일이나 6.25 등과 관련된 식(式) 등을 봐도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6월이 되면 의무적으로 관람해야 하는 반공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무서웠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과 자식의 주검을 부여안고 우는 분들의 모습이 가슴 아파서, 비록 영화지만 어린 마음에도 전쟁의 잔인함을 목격하는 순간이 몸서리쳐지게 싫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 잔인하고 냉혹하고 냉엄했던 시대를 겪어내고 살아낸 분들이 내 부모님이고 조부모님 세대였습니다. 몇 년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제 아버지도 국가유공자십니다. 제 아버지지만, 아버지가 대단하신 점은 아버지는 이미 학도병으로 일제시대에 강제 징집된 바가 있어 6.25 가 발발했을 때는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도 총알받이로 나섰는데 내 나라 전쟁에 가만있을 수는 없다’며 자원 입대하셨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전쟁에서 총상을 입고 제대하셨지만, 국가유공자 신청은 하지도 않고 사셨습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내 손으로 먹고 살만한데 혜택은 바라지도 않는다, 는 이유였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찍 신청했더라면 우리 자매들은 편하게(?) 대학을 입학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제 언니가 아버지 사후에 유공자 신청을 했고, 아버지의 작은 애국심이 인정을 받아 아버지의 유해는 현충원에 옮겨졌습니다.
가끔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망각합니다. 현재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이 우리에게는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럽지만, 과거의 어느 시대에서는 너무도 간절하게 꿈꾸었던 불가능한 미래였음을.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님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겪었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도 겪었으며, IMF라는 경제 폭망 직전에서도 주머니를 털어 나라를 회생시켰습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이런 애국심이 있을까요? 내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쟁터로 나설까요? 또 한 번의 경제위기가 온다면 소중한 내 재산을 나라를 위해 내놓을 수 있을까요? 아니오.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 안의 어딘 가에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아버지같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같은, 내 아버지보다 더 많은 고초를 겪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 당신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당신들이 꿈꾸셨던 내일을 기억하고, 당신들이 선물한 우리의 오늘을 감사하게 살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