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잘 살아보세
주위 사람들을 보면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개발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드닝을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만들다가 내친김에 다양한 소품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두들 예전처럼 모임을 갖기도 힘들고 외식이나 헬스장을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기 위한 자구책이겠죠. 저역시 최근에 다육이 기르기에 빠져 나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가든센터에서 사오기는 했는데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모르는’ 다육이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인터넷과 유튜브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얘 같기도 하고 쟤 같기도 한 식물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하는 일없이 피곤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머리를 써야 치매에 안 걸릴 것’ 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흙을 조물락거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이번 달 컬럼 제목을 ‘잘 살아보세’ 로 정했습니다. 지금 경기가 이 모양인데 어떻게 잘 살라,는 말인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저는 ‘잘살아보자’가 아니라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전자의 ‘잘살아보자’는 말은 부유하게 살아보자는 말이고, 후자의 ‘잘 살아보자’는 말은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살거나 훌륭하게 살자,는 말입니다. 문법적으로 설명하면 부사 ‘잘’이 동사 ‘살다’를 수식하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팬데믹 상황이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고도 볼 수 있는데, 암이나 난치병 혹은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서는 돈이 마법같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돈만 있으면 시한부 생명도 연장시키고 죽을 사람을 살려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대통령도 죽을 수 있고 재벌도 죽을 수 있습니다. 전염병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합니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와 고가에 팔린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겠지만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잘사는 것’이 아닌 ‘잘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19 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대미문의 현 상황에서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들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거듭 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들은 누가 봐도 ‘잘사는’ 사람들입니다. 명예도 있고 사회적인 존경도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진 것도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생명을 담보로 흥정을 하는 추한 모습을 보면서 ‘잘사는’ 것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의사가 되면 의무적으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현실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과 참 다르죠. 우리 모두는 저들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잘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