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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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언젠가도 밝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의 제 첫 직장은 동아일보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올 당시인 90년대에는 동아일보,가 나름 정론지(政論紙)여서 인터뷰를 한 신문사는 여럿이었지만 저는 위의 이유로 동아일보를 선택했고 현지 신문기자 로서의 첫걸음을 떼였었습니다. 한국에서는 KBS가 제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고, 미국에서의 첫 직장은 동아일보, 그리고 이후로도 주간지나 신문에 컬럼을 쓰는 시간들이 이어져오고 있으니 언론 매체 들과의 인연이 결코 짧지는 않은 듯 합니다 . 기억에 남는 여러가지 사건이나 인물 중에는 반 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있습니다. 당시는 주미 한국대사관 부총영사의 직분이어서 워싱턴 인근에서 벌어지는 한인언론과의 취재나 행사에는 그가 참석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남아있는 자료 중에는 한국 티를 벗지 못한 정장 차림의 제가 젊은 시절의 그를 인터뷰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름 반가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반가운 전화 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흘렀지만 전화의 주인공은 당시 저와 함께 신문사에 근무했던 동료였습니다. 맡은 업무는 달랐지만 그의 와이프가 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온 새내기였기 때문에 공감하는 것이 많아 서로 위로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 25년 정도를 만나지 못하고 살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저를 찾던 중 구글 검색을 통해 인터넷에 떠있는 제 글을 보게 되었고, 지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들이 찾는 사람이 제가 맞다는 확신이 들자 신문사에 연락해 제 연락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가면서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25년이 넘어 만났는데도 엊그제 헤어진 사람들인 냥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고요. ‘인연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그런 가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고 합니다.

오래전에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 적이 있는 법정 스님의 글인데 읽을 때마다 공감 백배에 여운이 남는 글이라 전문을 여러분들과 다시 나누고자 합니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 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 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인간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합니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는 어디쯤 일까요? 우리 모두는 이 거리를 찾는 것이 힘이 들어 상처도 많이 받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습니다. 스쳐가는 인연을 그냥 보내지 못해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며 보내는 일도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인연이란 상처가 없어야 하는 관계라고 봅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고 개운하지가 않다면 그건 좋은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저를 찾은 이들도 저와의 추억이 좋은 기억이 아니라면 저를 찾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저를 찾을 수 없었겠지요. 저에게는 부족한 저자신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작업인 글쓰기가 참 고마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애독자 여러분들도 진정이 깃든 좋은 인연 많이 짓고 만드는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인연이란 한 순간의 만남이 아니라, 만남이 남긴 추억으로 우리 안에 오래도록 머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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