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인생, 그 안에서 길을 잃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진행을 맡은 기자 출신의 진행자가 첫 방송 소감을 묻자 긴장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손이 달달 떨렸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주 오래전 새내기 기자였던 제 모습이 떠올랐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기자인 것을 알면 인터뷰이(Interviewee)로부터 무시 당할 까봐, 노련한척 관록 있는척하려고 애를 썼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민망함에 헛웃음을 짓게 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뭐든 자신만만했고 삶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GPS가 있던 시절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고 헤매기는 했을 지언정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늘 자신감이 넘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가끔, 아주 가끔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먹고 사느라 그날이 그날 같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바쁜 삶을 살면서, 또 아이들을 키우느라 아등바등 정신없이 살았던 날들이 지금 생각하면 현실이 아니었던 듯 아득하게도 느껴집니다. 바빴을 때는 눈 앞에 있는 길이 외길로 보여 그 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아이들도 곁을 떠나고 보니 갑자기 길을 잃은 것 마냥 이정표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오늘 오래 알고 지내던 분의 부군이 곧 뇌검사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늘어난 평균 수명만큼이나 건강한 노후를 꿈꾸지만, 현실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각종 노인성 질환을 별책 부록처럼 안겨 줍니다. 특히 성공한 사람도, 돈이 많은 부자들도 피해갈 수 없는 치매라는 질병은 길을 잃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모든 것에서 길을 잃게 만듭니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사람의 정신(지적)능력과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실을 말하며, 어떤 사람의 일상생활의 장애를 가져올 정도로 심할 때, 우리는 이것을 치매라고 얘기합니다. 수 세기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노망이라고 부르면서 나이를 먹게 되면 피할 수 없이 필연적으로 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치매는 단지 나이가 들어 발생하는 그런 생리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치매는 여러 가지 질환들에 의해 나타나는 병적 증상이라고 합니다. 치매는 미만성 레비소체 치매, 두부 외상성 치매 등 매우 다양한 질환들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는데,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미만성 레비소체 치매들은 치매의 증상으로만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란 기억력, 사고력 및 행동상의 문제를 야기하는 뇌 질병이라고 합니다. 저는 알츠하이머병이 곧 치매인 줄 알았는데 알츠하이머는 정상적인 노화 또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라고 해서 좀 찾아보았더니, 치매는 일상 생활을 방해할 정도의 심각한 기억력 및 기타 지적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일반 용어이고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사례의 6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한국도 날로 증가 추세지만, 미국의 경우 현재 6백만명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살고 있고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알츠하이머병 및 기타 치매에 걸린 미국인의 수는 매년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참 걱정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암 같은 질병보다 치매에 걸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사실 다른 질병들의 경우 고통은 환자가 받지만, 치매는 주변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니까요. 그래서 치매 자가진단법도 찾아보았습니다. 요즘에는 초기 치매환자도 증가 추세이니 말이죠.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 해 보시겠어요?
1. 오늘이 몇 월이고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른다. 2. 자기가 놔둔 물건을 찾지 못한다. 3.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 4. 약속을 하고서 잊어버린다. 5.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온다. 6. 물건이나 사람의 이름을 대기가 힘들어 머뭇거린다. 7. 대화 중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반복해서 물어본다. 8.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다. 9. 예전보다 계산능력이 떨어졌다. 10. 성격이 변했다. 11. 이전에 잘 다루던 기구의 사용이 서툴러졌다. 12. 예전보다 방이나 주변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한다. 13. 상황에 맞게 스스로 옷을 선택하여 입지 못한다. 14. 혼자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가기 힘들다. 15. 내복이나 옷이 더러워져도 갈아입지 않으려고 한다.
제 어머니도 만 9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는데 노인성 치매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 하셨었습니다. 평생 읽는 것을 즐겨 하셨는데도 말이죠. 아직도 추위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지만 잔디밭 어디에 선가 들꽃이 고개를 내밀고 나무의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면 봄은 길을 잃지 않고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길을 잃지 않고 계획한 길을 잘 따라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