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인상은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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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인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믿고
혹자는 믿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래전 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대부분이어서 누군가 저에게 나쁜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을테지만 그래도 저는 첫인상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삶의 연륜과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에 단순히 좋은 인상, 왠지 찜찜한 인상 정도로
느낌을 구분하였었지만 살다 보니 다는 아닐지라도 ‘인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믿게 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사람들을 많이 만 난건 한국에서 만은 아니네요. 미국에 와서도 기자로
일했고, 그후에 비지니스를 통해 많은 미국 사람들을 만났으니 말이죠. 그런데 제 경험상
미국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가 얼굴에 흔적을 남기더군요. 인자한
인상의 고객과는 별 마찰이 없는데, 신경질적이고 못되게 생긴 고객은 친절하게 응대하려는
사람의 인내심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타도시 미팅에 참석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만나기전에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만났음에도
인상이 너무 안 좋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보려고 했음에도 언행
또한 예의범절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더 놀랐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려서 그렇다고
이해라도 해보겠는데 60세가 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누구이건 배려하는 마음도
없고,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당돌함에 참석자 모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도 표독하고 앙칼진 인상을 가진 사람은 결코 순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트러블이 많았습니다. 물론 인상이 순하다고 정말 순한 사람은 아닌 경우도 많았고, 인상은
좋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다만 왜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인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한다는 말은 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을 때 일입니다. 제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앉으려고 했을 때 옆자리 승객은 동남아시아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아쉬웠지만 비행기가 이륙하고나서 저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녀가 앞자리에 무언가를 걸기 위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며 저는 왜 가방을 저기에
걸려고 하는거지, 라며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걸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녀가 걸고자 했던 것은 발걸이 였습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다 보면 다리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다리가 붓는데 앞좌석에 발걸이를
걸고 발을 거기에 올려놓으면 도움이 되는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발걸이를 걸어놓고
거기에 제 다리를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양을 하며 네가 올리라,고 했지만 그녀는
자기는 나중에 할테니 네가 먼저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게 되어 그녀가
베트남 사람이고 애틀랜타에 사는 사람이며 베트남에서 2달 동안 휴가를 보내다가 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베트남 사람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조카
부부가 베트남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어 언젠가는 한 번 방문해야지, 라는 생각을
해봤을 뿐 베트남 사람에 대한 지식은 제 머리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본
그녀의 인상은 그녀의 친절함만큼이나 선해 보였습니다. 제게 잘해줘 서가 아니라 그녀의
인상은 그냥 순한 양 같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절한 그녀가 주위 사람에게는
얼마나 배려심을 아끼지 않을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런 마음과 생활이 그녀의 인상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지금,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제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제가 주는 하찮은 사랑에도 화사하게 피운
꽃으로 보답하는 식물들처럼 저도 꽃 같은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