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성찰 2025
올 한 해, 우리의 일상을 쏜살같이 꿰뚫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면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으로 채워진 하루들이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었습니다. 하루라는 무대에서 나,라는 주연을 중심으로 내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많은 사건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제 삶에 이런저런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예쁜 무늬도 보기 흉한 무늬도 내 그림자이고 내 삶의 숨길 수 없는
궤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잘하지는 못하지만 국민게임 고스톱, 이 화투 게임도
하찮아 보이지만 상대를 이기고 돈을 잃지 않으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패로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잘 짜야 합니다. 짧고 굵게 고도리나 청단, 홍단, 초단 등으로 이길
것이냐, 아니면 피라고 불리는 쭉정이들을 많이 끌어 모아 점수를 낼 것이냐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게임도 이렇듯 신중하게 생각을 하면서 , 내 삶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하루를 살면서는 그렇지 못했던 점을 스스로 반성합니다.
생각해보니 너그럽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해심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고,
깨닫고 느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 사랑도 많았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만족하고 잘살았다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드물겠지만 오만일지 언정 그런
마음을 한 번은 느껴보고 싶기도 합니다.
올 한해 주변에서 목격했던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생각이 깊어 부표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사람보다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思考)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나이는 먹었어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심히 부족한 사람, 책임과 의무는 마다하고 권리만 챙기려는 사람,
일은 싫은데 자리 맡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잘하는
사람을 질투하고 폄훼(貶毁)하는 사람,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람 등등. 비록
개인적으로는 내세울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한 해이기는 하나 앞서 예를 든 경우처럼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게 살았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나이가 저를 저절로 어른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은 저를 조금씩
익어가게는 만들겠지요.
제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끼고 사는 아들들을 보면 늘
마음속에 빚 아닌 빚, 숙제 아닌 숙제처럼 시력교정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2주전에 드디어 수술을 했습니다. 혹자는 아이들이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해
왜 미안한 마음을 갖느냐는 의문을 말하겠지만, 언젠가 신문에서 시력은 유전적인
영향도 크다는 기사를 읽은 이후 남편의 나쁜 시력이 유전되어 일찍 안경을 쓰게 된
것 같아 그냥 미안한 감정을 안고 산듯 합니다. 유전은 선택이 아니니까요. 두 아이
모두 수술을 해도 되는 나이를 기다리다가 한꺼번에 수술을 해서, 장님 아닌 장님이
된 아들들을 케어 하느라 나름 힘든 시간이었지만, 하루하루 잘 살아낸 것 같지 않은
올해에 대한 감정을 이 것 하나 때문에 숙제를 한 것 같은 후련한 마음으로 나름
뿌듯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록 급하게 한국에 가서 수술하고 오느라 몸은
고되지만 말입니다. ^^
이 해인 수녀의 시 <살아 있는 날은>으로 제 글 맺음을 대신합니다. 저 역시 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올 한해 열심히 살아 내신 독자 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마른 향내나는 / 갈색 연필을 깎아 /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 몇 번이고 지우며 /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아도 /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 당신을 위하여 / 소멸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