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서울에서 띄우는 엽서
저는 지금 서울에서 이 글을 씁니다. 갑작스러운 감은 있지만 한국에 와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꼭 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팬데믹 중에는 자가격리 등의 제약이 있어 나오기가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PCR 검사도 없어지고 여행자에 대한 요건 등이 많이 완화되어 결정을 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의 서울 방문은 처음이라 어머니의 빈방 빈자리를 보는 마음은 잠깐 울적했지만 부모님이 함께 모셔져 있는 현충원을 참배하고 제 마음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슬픔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 돌아가신 분들은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을은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서울 시내 어느 곳을 가도 어깨를 부딪히는 인파는 여전하고 시내 도로는 물론 교외를 벗어나는 고속도로는 단풍 구경을 떠나는 차량들로 넘쳐납니다. 날이 좋아 바람도 쐴 겸 잠시 다녀온 남이 섬은 단풍을 구경하러 나온 행락 인파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한 국민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는 여전해서(적어도 남이 섬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촬영지였던 메타 세콰이어 숲이나 은행나무 숲 등은 여전히 인기 있는 포토 존이었고 연령대를 막론하는 핫 플레이스였습니다.
늘 끼고 다니는 마스크 탓도 있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한 공간에서 여행자의 마음으로 돌아본 인사동과 북촌 그리고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등은 볼때마다 새롭다고 느꼈지만 경복궁을 나서서 마주한 광화문 광장은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경복궁 궁내를 거닐 때도 못내 귀에 거슬렸던 확성기 소리의 정체는 전 oo 목사가 이끄는 일명 태극기 부대의 소리였고, 그들은 여전히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뉴스를 통해서 윤석열 정부의 공과를 보고 있지만 어떻게 시대를 막론하고 빨갱이 논란은 끝이 없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경제회복이나 민생의 안정은 뒤로 한 채 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는 현 정부를 보면서 저는, 과거 정권이나 전 대통령에 관련된 잘못이나 진상 규명은 해당 부서에 일임하고 현안을 처리하는 미국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광화문 광장에는 태극기 부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반대편에는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엄청난 인파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누려야할 어떤 권리도 없고 의무가 없는 사람이지만 모국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는 대접받고 안에서는 국민의 인권이 지켜지고 약자가 보호받는, 그래서 경제 강국으로 서의 위상을 되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 노스 캐롤라이나의 가을도 한국 못지 않게 아름답겠지요. 한국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산 시간들이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들보다 조금씩 더 길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제가 한국 사람이라 기보다는 미국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예전에 못내 그리워했던 것들보다 불편한 점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보면 요. 이제 그리웠지만 만나지 못했던 몇몇 얼굴들을 더 보고 나면, 익숙한 얼굴들과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 가야겠지요. 내 책상이 아닌 곳, 내 컴퓨터의 자판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쓰는 글은 저를 집중하기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깊어 가는 서울의 가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아래 부유하는 모든 것들의 향기를 모아모아 여러분께 보냅니다.
2022년 10월의 끝자락에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벌어진 참사를 슬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