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빈 둥지 Empty Nest
저는 지금 Alabama 주의 한 모퉁이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7시간 반정도를 꼬박 쉬지 않고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가 첫 직장을 구한
곳이라 겸사겸사 와 봤습니다. 평범한 이민 가정의 다른 엄마들처럼 저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느라 떨어져 살다가 졸업을 하고 난 후 직장 때문에 더 먼 곳으로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 짝을 만나면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되겠기에 사실 이정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 운전하면 볼 수 있는 거리에 제 아이들은 사는
셈이니까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다 in state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먼 거리에서 사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애가 떠나고 작은 애가 떠나고 나니 집에 온기가 사라진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저도 큰 아이를 대학 기숙사에 두고 오던 날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면서 많이 울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둘째 아이 때는 슬프지가
않더라구요. 한 번 겪어서 경험한 일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인지 큰 아이가 직장을 구해
떠날 때도 덤덤했는데 둘째 아이마저 떠나고 나니 집이 썰렁해지고 익숙했던 아이들의
물건이 사라져버린 빈 방을 보면서 울컥해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껌딱지처럼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게임만 한다고 구박도 많이 했는데 텅 빈 책상위를 보다보면,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알았더라면 잔소리를 하지 말걸, 하는 후회도 많이 듭니다.
영어로는 Empty Nest 라고 하죠? 이제는 빈 둥지가 되어버린 쓸쓸한 집에서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멀다고는 하지만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제주도나 울릉도도 아니고 먼 타국으로 가버린 딸의 빈 자리를 보며 눈물 지었을 어머니의
그 마음이 이제야 헤아려지는 것을 보면 전 역시 못난 딸이었음이 분명해집니다.
이별은 떠난 자의 몫이 아니라 남은 자의 몫이라고 합니다. 떠난 사람은 자기가 떠난 뒤의
공허함을 모릅니다. 남은 사람만이 빈 공간을 바라보며 눈물 짓고 후회하는 거지, 그래서
어르신들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을 하셨는가봅니다.
불완전한 인격체인 우리 모두는 뒤늦은 후회를 많이 하면서 삽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아파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가족보다 타인과의 만남에 더 많은 의미를 두던 시간들도 있었고
그것이 봉사고 재능기부라고 스스로를 미화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는 그것이 사실이고 나는 최선을 다한 관계였지만 지금 그 일, 그 사람들 중에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고 의미 없는
것은 없다지만 일의 경중(輕重)을 헤아리고 사람의 진실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의미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댓가는 어떤 식으로든지 치루게
되더라는게 제 경험입니다. 법정스님도 말씀하셨죠.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고.
코비드19으로 인해 우리는 근 1년이라는 시간을 도둑 맞았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어떤 것이든 영원히
존재할 것은 없기 때문이죠. 지금 제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들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