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봄날
쨍하게 맵고 날이 선 것 같은 추위도 가고 메마른 가지에 꽃망울이 부풀어오르는 봄이
왔습니다. 몇 해 동안 꺼내지 않았던 롱 패딩을 입어야 했을 정도로 지난 겨울 추위는
매서웠는데 오늘 운전을 하면서 본 고속도로 옆 꽃나무는 벌써 꽃을 화사하게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기승을 부려도 이렇듯 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이 성부 시인의 시처럼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옵니다. ‘어디 뻘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꺠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는 봄, 환경
오염으로 인해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자연의 시계는 이렇듯 정확합니다. 사계절이
시작되는 이 봄에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해 봅니다.
1년 반 전 이사를 하면서 저는 정원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었니다. 그래서 감나무
몇 그루 심은 것 외에는 밭도 일구지 않고 너른 화단에 꽃도 사다 심지 않았습니다. 그저
화분 몇 개 사다 꽃을 감상했을 뿐, 이사를 하면서 가져온 화분들 외에는 할 일을 만들지도,
세간을 늘리지도 말자고 다짐을 한 터라 나름 한갓진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름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살았던게지요. 당연히 몸은 편했습니다. 그런데 편한 몸에 비례해
몸이 무거워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지만 헐렁하던 옷이 딱 맞는 걸
느낀 순간 게으른 시간을 보낸 저의 성적표를 받아 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 병화 시인도 <해마다 봄이 되면> 이라는 시에서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중략)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중략)’
그렇습니다. 봄은 시작의 계절입니다. 가을에 좋은 결실을 얻으려면 밭을 잘 일구어 좋은
씨를 뿌려야 하듯, 저도 제 마음 밭에 ‘부지런히 살자’는 씨 한 줌을 뿌려봅니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여러분과 함께 수확물을 나누겠습니다. 생명의 시작 봄에 제 글을 마무리하며
독자 여러분들과 시 한 편을 나누고 싶어 소개합니다. 저 역시 남이 닦아놓은 편한 길도
좋지만 조금은 힘들더라도 함께 길을 닦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라 공감하며 시를 올립니다.
정 호승 시인의 <봄길>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