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무제(無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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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른데도 사냥을 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간은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도 더 많은 걸 움켜쥐려고 합니다. 꽃은 움켜쥐면 이내 시들어버립니다. 모래를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달군 쇠를 움켜쥐면 손에 화상을 입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움켜쥐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이섭<인생의 답은 내 안에 있다> 중에서-

저는 글을 쓸 때 머릿속의 GPS를 켭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주제(행선지)로 가기 위해 어떤 방향(경로)으로 글을 풀어나갈 것인지 예상되는 전개를 머릿속에 펼쳐 봅니다. 다행히 막힘이 없이 잘 풀리면 순조롭게 글을 마무리 짓지만 그렇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생각이 막히는 현상이 일어나면 쓰고자 했던 주제(행선지)를 포기해 버립니다. 실제 현실에서 차로 이동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곳에 트래픽이 발생하면 GPS가 다른 경로를 알려 주겠지만 머릿속 생각의 GPS는 막히면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경우 마감을 맞춰야 하는 조급함에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여행지를 물색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러가지 장르의 책이나 제목들을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제 마음속 어딘 가에 뿌려져 있었지만 방치해 두었던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한 내용처럼 우리 인간들은 소유욕이 많습니다. 돈이 모이면 좋은 차와 큰 집을 사고 싶고 거기에 걸맞게 꾸미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들의 물욕에는 적당히, 라는 것이 없습니다. 더 많이, 더 큰 것을 바라고 갈구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잘 사나 못 사나 우리들은 하루에 정해진 만큼의 끼니,라는것을 먹습니다. 로마제국이나 프랑스의 귀족들은 강제로 토하면서까지 미식을 탐했지만 정해져 있는 위의 크기를 무한대로 늘리진 못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도 평생을 통해 쌓아온 귀하고 값진 것들을 죽을 때 가져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나 역사속의 인물들을 나열할 정도로 잘 알면서도 우리 역시 그 물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 유전자의 힘이 강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빨간 코끼리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화에 앞서 절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코끼리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화되기 때문을 그 생각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프레임(Frame)이 형성된 것입니다. 프레임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이고 어떤 틀을 가지고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게 프레임의 법칙이랍니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의도 또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데 어떠한 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틀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시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을 믿지만 보이는게 다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의 시각이나 생각은 왜곡되고 굴절될 수 있습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골프장의 그린에 올라서면, 오르막인 것 같은데 내리막이고 직선인 것 같은데 커브가 있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한낱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골프장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믿을 수 없는데 사람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나 타인의 평가를 어떻게 맹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남에게 말을 전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선입견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을 타인에게 씌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저 역시도 이렇게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있지만 주변을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3자에 대한 생각을 왜곡되게 만드는 광경을 보면서 지면을 통해 한 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그리고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맞아 잠깐 소망해 봅니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보다 남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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