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내 탓이 사라진 세상
제 소소한 행복 중 하나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인은 아니라 제가 커피를 마시러 가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저는 그곳에서
문자도 확인하고 이메일도 확인합니다.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몇 시간을 죽치는
카공족 부류는 아니고 휴대폰으로 급한 일을 처리하는 정도지만 햇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즐기는 커피 타임은 나에게 작은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특히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작은 머리속을 꽉 채우는데,
혼자만의 티타임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제가 목격하고 지켜본 몇 가지 일들이 있는데 이 일들의 중심에는 ‘모든
잘못이 나 아닌 남에게 있다’라는 회피적인 생각이 공통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현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유독 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제 일이 아닌대도 제 가슴이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리게 됩니다. 사실 제
주변에는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민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하는 것이 공동체 내의 시기와 갈등입니다.
신앙 유무와 관계없이 누군가 잘 나가면 어떤 식이 로든지 질투의 대상이 되어
뒷담화의 대상이 됩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시기심이나 진심으로
축복해주지 못하는 편협함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완고한 마음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간절하지만 그 기도속에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빠져
있습니다. 내 마음 밭이 얼마나 거칠어져 있는지,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는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합니다. 우리가 ‘내 탓이
아니다’라고 외칠 때, 사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기회를 스스로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원인이 ‘남’이나 ‘환경’에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열쇠
또한 내가 아닌 외부에 있게 됩니다. 결국 나는 내 인생의 해결사가 아닌, 상황에 끌려
다니는 관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겠지요.
진정한 신앙이란 거창한 교리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몰아칠 때 ‘누가 이
비를 내렸는가’를 따지기 전에 ‘인생이라는, 내 삶의 키를 제대로 잡고 있는가’를
살피는 마음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면, 우리가 그분 앞에
내어놓아야 할 것은 남의 잘못을 고발하는 조서가 아니라, 나의 부끄러움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벌써 3월이고 봄도 머질 않은 듯합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구석구석 쌓인 먼지는 결국 주인인 내가 닦아내야
깨끗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음의 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마당에 쌓인
눈을 탓하느라 내 집 앞의 빙판길을 방치한다면, 결국 넘어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짧은 고백 하나를 연습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제 탓이고 제 책임입니다.’
글을 쓰는 제 손끝도 오늘만큼은 남을 향하기보다 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의 못난 부분을 외면하기보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려놓음으로써 상대방에게 진솔 되게 다가가는 우리가,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