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한때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던 명 수필 중에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추억속의 수필이고 1982년 이후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수필입니다. 시몽으로 대표되는 구르몽의 시만큼이나 낭만적인 이 수필은 제목만으로 여러 문인들에게 널리 인용되었던 유명한 수필 중 하나이고 가수 김 경호도 비슷한 감성으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란 히트곡을 불렀는데 오늘은 저도 이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그린스보로 인근지역에서 30년을 살고 있는 토박이(?)중 한 사람입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저런 봉사를 한 시절도 있었고 알게 모르게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처음 살았던 곳은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Fairfax였습니다. 그곳은 그 당시도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아 롯데(아씨)마트 등 크고 작은 식품점도 많았고, 워싱턴 정가가 가까웠던 때문인지 당시 유명하다는 한국 일간지는 모두 발행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가지 사건 사고가 늘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결정에 따라 신문사 기자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이렇게 오래 머물 계획은 없었지만 살다 보니 정(情)도 들고, 주어진 하루는 같지만 대도시처럼 빨리빨리 가 아닌 천천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름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도 큽니다. 다른 지역에는 교회별로 다 있는 한국학교가 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하나의 한국학교로 존재하게 하는, 여러 교회 목회자들의 희생과 학교 관계자들의 헌신도 그렇고, 늘 잡음이 있는 일부 지역의 한인회와 달리 나름 원만하게 대를 잇는 한인회, 그리고 연세는 드셨지만 늘 활동적으로 움직여지는 연장자회 등 소도시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이곳에서 아직은 이르지만 내 어정쩡한 노후계획을 세워볼 정도로 전 이지역에 특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요즘 이 지역에 회의가 들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회의가 들고 있습니다. 저의 글을 관심있게 봐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교회나 단체에서의 자리 혹은 직책이라는 것은 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서의 나는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에 불과할 따름이고,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전임자는 후임자를 도와 그 단체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해 왔던 저로서는 지금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슬픕니다. 전직 회장 두 사람이 현 한인회장이 사퇴를 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고, 지역사회 유지들이 사퇴를 만류하니 사퇴문을 근거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비방과 모략을 일삼으며 조용했던 한인사회의 근간(根幹)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다 보니 제가 알고 있던 공정(公定)과 상식(常識)의 한인사회는 이대로 소멸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면서 슬퍼졌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때가 되면 놓아야 하고 떠나야 하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에 대한 욕심인지 그 속내도 참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류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때가 차면 달도 기운다, 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고 달리는 기차안에서는 창밖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멈추어야 보이는 것은 자연만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과 상관도 없는 지역 주민일 뿐이지만 두 사람이 지역사회를 헤집고 다니며 임기도 몇 달 남지 않은 현 한인회장을 압박하고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은 하고 싶습니다. 부디 전임(前任)은 전임 답게 처신하는 것이 보기에 좋을뿐더러 지역사회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는 말은 하고 싶습니다. 이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슬프게 만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제발 남을 죽이려 하지 말고 내가 죽어 지역사회에 거름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