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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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예정되어 있는 여행의 행장을 꾸리며 글을 씁니다. 저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고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결혼
전에나 내 아들이지, 결혼하면 사돈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부모들이 하는 말인 것을 보면 우리 아이들 역시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요. 그래서 마음훈련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서운하다는 말은 나의
기대치에 비례하는 말일테니,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의 남편이 될 내 아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자는 다짐만 입죠. 네, 압니다. 인생 선배님들이 뭐라고 하실지… ‘나도
그렇게 다짐했어. 그런데 겪어봐. 말처럼 쉽지 않아’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래서 아직은 내 아들일 때 어려서 하지 못한 추억 쌓기,를 해보자고. 그런데
야심차게 시작한 계획에 변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에너지요, 남는 것도 에너지였던 나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는 여행 보따리를
꾸리는 것도 일이고, 근사한 호텔도 내 집 침대처럼 포근하고 안락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아직은 해발14,130 feet 정상도 별 문제없이 올라갔다 오기는 했지만, 이제는
가슴보다 다리가 떨리는 나이라는 것이 슬슬 체감이 되고 있습니다.

올 가을의 단풍은 유난히 곱다,는 말이 들립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전 붉은 도시
애리조나로 향합니다. Butterfly wonderland, 사막의 Botanical Garden, Antelope 와
그랜드 캐년 등 가슴 설레는 볼거리도 많지만 그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에
의미를 두고 떠나려고 합니다. 일용 엄니로 유명한 탤런트 김 수미 씨가 75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니, 백 세 시대, 혹은 다가오는 120세 수명을
어떻게 살아갈까, 를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지고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 현재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민요는 게으른 사람들의 베짱이 송이 아니라, 저같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후대에 남기는 교훈의 노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세계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고 오늘 내 눈앞에
펼쳐진 단풍은 아름답지만 우리가 이 풍경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만끽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반 기룡 시인과 박 태강 시인의 시 <단풍> 을 소개하며 글
맺음을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가을입니다.

해마다/ 색동옷 입고/ 파도타기를 하는 듯/ 점점이 다가오는 너에게/ 어떤 색깔을/
선물해야 고맙다고 할까

그 당당하던/ 푸르름은 어디에 가고/ 무안을 당했느냐/ 꾸중을 들었느냐/ 얼굴이
빨개져서 보기 좋구나/ 빨개져도 놓지 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 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