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가을이 찾아든 뜨락에서
참 이상도 합니다. 자연은 봄이라고, 여름이라고 외치지 않아도 우리는 봄이 온 것을 알고,
여름이 깊어 가는 것을 압니다. 또한 몇 월 며칠부터 가을이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오감으로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뽐내던 나뭇잎들이 노랗고
빨간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고 사과, 감 등의 과일이 빠알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시상(時相)을 일깨우고 마음은 괜스레 고독과 우수로 젖어 듭니다.
어제는 동네 연장자회 어르신들의 추석잔치에 가서 난타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다른
지역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린스보로 지역은 신자 수가 많은 교회 두 곳이 번갈아 가며
어르신들에게 장소와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어르신들을 섬깁니다. 각종 나물과 다양한 전
종류에 잡채, 갈비찜 등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과 한인회와 개인 기부금으로 마련된
넘치는 상품 등으로 풍성한 한가위 잔치를 즐기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가끔 공연을 위해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다 보면 작년에
뵙던 얼굴들을 뵐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과 상품은
더없이 푸짐했는데 생각만큼 참석하신 분들이 많지 않아 왠일인가 했는데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셔서 그곳에 가신 분들이 많다 하더군요. 치열하게 삶을 일구었던 이민 1세대들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니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은 아름다운데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저에게는 작은 패티오가 있습니다. 앉아서 멍 때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빼면 자잘한
다육이 화분들과 초록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저만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저는
자연이 보여주는 사계의 모습을 감상하고 즐깁니다. 크고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작은
몸체의 다육이가 보여주는 꽃도 즐기고 지금은 단풍이 들어가는 모습도 즐기는 중입니다.
선인장 종류들인 다육이가 단풍이 든다고 하면 ?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다육이는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성장하고 몸을 빨갛게 물들입니다. 물론 모든 나무가 단풍드는 것이 아니듯
다육이도 모든 종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도 나이 들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요. 오세영 시인은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하긴
멀리서 보는 단풍은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가을은 없던
시심도 일깨워 모든 이들을 시인으로 만들지만 저는 제 자신의 시심을 전하기보다 천 양희
시인의 <오래된 가을> 이라는 시를 소개함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