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수상]제 탓이요
한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나이를 한 해 두 해 더 먹어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사람 보는 눈이 막눈,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원래 그런 사람’에게는 상처받을 일도 없는데 ‘그럴 줄 몰랐던’ 사람에게 받는 배신감이나 실망은 엄청 크고 상처도 오래 갑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몰랐던’ 경우가 참 흔합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이건 그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사람 볼 줄 몰랐던 내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렇게 생겨먹은 그 사람 탓이 아니라 그런 사람인 줄 가려내지 못했던 내 탓이었던거죠. 사람은 누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본능이 있는지라 누군가가 그 실체에 대한 조언을 해줘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가 겪어 보고서야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일상에서야 사기로 인한 재산이나 금전 문제가 아닌 이상 속앓이로 끝나는 관계가 더 많지만 문제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얽히고 설키는 것이 좁은 동네에서의 인간관계이다 보니 깔끔하게 털어내고 잘라 내기가 쉽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 쪽이 앙심을 먹으면 구설수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좋은 말은 한 두사람의 입을 건너면 사라지지만 나쁜 말은 입을 거칠수록 날개를 다는 법이니까요. 너나 나나 카더라 통신원이 되는건 시간문제고,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악플 때문에 고통받는 건 유명인만이 아닌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지식인(知識人) 중 한 사람인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플러와 싸우지 마십시오. 달래려 하지도 마십시오. 눈길을 주지 마십시오. 극복하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싸울 가치가 없고, 달랠 수 없으며, 눈길을 줄 이유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으니까요. X무시가 최선의 대처법입니다.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플을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고 황폐한지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남의 문제를 가지고 왜 내가 고민합니까?…..무시하거나 웃어 버리면 그 악플은 오로지 악플을 단 그 사람을 해칠 뿐입니다’
누구나 내게 화살을 날려대는 악플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열등감이나 시기, 질투에 찌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상대를 인정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거죠.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질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대상이 그 사람보다 잘 살거나, 고학력이거나, 외모나 몸매가 특출하거나, 성격이 좋거나, 배우자나 자녀가 잘 나가는 등등의 경우 만고의 불치병인 배앓이(?)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약도 없는 이 병은 전염력도 높으니 이런 병을 가진 사람은 알아서 조심하셔야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드는 생각이지만 가을은 비움의 계절입니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고 비워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지려면 내 안에 가득찬 미움을 털어내야 하고,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는 이들은 어찌 보면 혜안(慧眼)이 없었던 스스로의 탓이 큰지라, 미풍에도 잎을 떨구는 창밖의 나무를 보며 통회(痛悔)합니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