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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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진 목사 (골스보로 한인장로교회)

본문: 요한복음 6장 전체 (중요 성구47~51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습니다. 9월
이 되면 추석이 생각납니다. 올 해 추석은 9월 중순 (17일)입니다. 여름에 떨어졌던 식욕도 선선
한 바람과 함께 돌아와 추석에 먹을 떡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먹어야 살고 또 살기 위해 먹
어야 합니다. 자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먹고 살
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문 요한
복음 6장에서는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개(오병)와 물고기 두
마리(이어)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6장 전체는 떡에 대한 이
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해마다 유대인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이 되면 출애굽기 23장 14~17절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 남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살던 여호와께 보이기 위하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율법을 지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중 한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던 것을 무리들이 알고 갈릴리로 돌아오셨을
때 큰 무리가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4:45; 6:2).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신 예수를 따
라왔고 그곳에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도 오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6절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무엇을 시험하고자 하신다는 말씀인가?’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관심과
생각이 항상 어디에 계신 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병고침과 기적의 역사의 목적은 언
제나 한가지 ‘예수께서 누구신가’를 알리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영생의 삶’에 이르도록 하
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그 가르침을 듣고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
고 있는 제자에게 다시금 확인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 빌립은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세상의 셈법으로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또 다른 제자 안드
레가 예수께 여쭙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는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
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즉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고 여쭈어 본 것입
니다. 그러나 그가 왜 이런 질문이라도 한 것일까요? 그것은 어렴풋이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신
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
께서는 그 질문을 받으시고 바로 제자들에게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앉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서 먹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해도 우리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희생으로 믿음으
로 드린 그것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우리를 사
랑하심을 믿고 그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 가져온 것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 아니라 스테이크 한 덩어리와 으깬 감자(매슈드 포테이토) 그리고 브로콜리와 토스티드 브레
드였다면 아마도 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다 함께 먹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없는 것
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가운데 있는 것, 희생으로 드리는 것을 함께 나누도록 오
늘도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무리가 배부르게 먹고 났는데도 남은 음식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줄 아시고 그들을 피
해서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 삼으면 이제 일 할 필요도 없고
예수께서 거저 주시는 떡을 먹으면 세상 편하게 걱정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재
미있지요. 우리도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식의 계산을 하지는 않고 있
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먹이신 목적이 분명히 있
었는데 그 많은 무리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떡을 먹은 많은 무리들은 그 후로 예수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22~26절). 예수를 찾
아다니던 무리를 다시 만난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
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절). 그리
고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예수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했을 때 예
수께서는 가장 중요한 본론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
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그리고 더 나아가 40절
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기적의 역사의 목적은 오직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것이었고 이
영생의 소망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도 우리는 이끄는 놀라운 능력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은 오늘도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희망으로 불신과 거짓 가운데서
신뢰와 사랑의 삶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도 우리 안에
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동행함으로 병든 세상, 병
든 가정, 병든 나의 몸과 마음에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사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후회 없는 가
장 보람된 남은 인생의 시간을 보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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