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몇 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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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철 목사 (그린스보로 한인장로교회)

본문: 딤전 4:15, 고전 3:1-2

영화 백설공주 소설은 너무나 유명하여 디즈니에서 영화로 만들어 아마 온 세계에서 다 잘
아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 내용 중에 보면 백설공주의 계모로 들어온 새 왕비는 거울을
갖고 있었는데, 거울을 보며 반복적으로 묻는 질문이 나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그 때마다 거울은 “물론 왕비님입니다. 왕비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라고 답합니다. 물론 백설공주가 자라서
아름다운 소녀가 되기 전까지 답변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21세기 오늘날에는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신체적으로 지금 몇 살이니?” 실제로 거울을 보고 이렇게 질문을 하면 답변하는 거울이
미국 라스베가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미국 라스베가에서 엑스포가 열렸었는데, 캐나다
스타트업 ‘누라로 직스’가 선보인 일명 ‘장수 거울’입니다. 사람들이 그 거울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다가 차례가 되면 거울 앞에 섭니다. 그러면 거울 상부에 내장된
카메라가 30초 동안 얼굴을 샅샅이 스캔하고 몇 초 후에는 스무가지가 넘는 지표가 거울
가득 띄어집니다. ‘맥박수, 호흡수’ 등등 거울 앞에 선 사람의 현재 건강, 노화 상태를
담은 리포트가 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숫자적 나이 또는 신체적 나이 말고, 우리의
영적인 성숙함의 나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그 상태를 알려줄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거울로 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계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해 보고, 그 분의 말씀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아 영적인 상태를 깨달아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역할입니다.
야고보가 거울의 역할에 대해 이미 가르쳐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약 1:23,24) 물론 우리가 성경을 거울로 본다고
하여도 우리의 좁은 이해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방대한 내용을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성경을 거울로 비유하면서도 오늘날의 유리 거울처럼
선명하지 않고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희미한 거울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우리가 그 날이 되기까지 성경을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도리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 개인에게 써서 보낼 때에도 그리고 고린도에
세워진 고린도교회 공동체에게 써서 보낼 때에도 성숙한 자로 살아가야 함을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하듯이 말할 수가
없어서 세속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젖을 먹이고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습니다.”(고전 3:1,2)

목회자 디모데에게는 성숙한 삶을 잊지 말라고 썼다면 고린도 교회의 공동체는 성숙하지
못하여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철없고 말을 잘 안 듣는 수준에 머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그리스의 고린도 구 도시에 가 보았지만 그 예전의 흔적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고린도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것에 민감했고 종교적으로도 타락했는지 그
도시에 살았던 크리스천들에게 분명 큰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거울을 보고 있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할까요? 우리는 영적인
나이를 말하려고 할 때에 두 가지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교회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받은 교회의 직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랍비였던 니고데모에게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데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자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0, 12) 니고데모는
랍비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보실 때, 성숙한 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리가 왜
성숙해지려고 성장해야 하는지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왕으로 믿어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볼
때에 처음 태어난 출생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출생하여 구원받은 자는 이제
계속해서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남은 현재에도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성숙입니다.

영적인 성숙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무엇인지 뚜렷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의
지배하심으로 크리스천의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살게 하시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해 살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 때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숙입니다.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갈 5:22,23)
성숙해져야 하는 데에는 목회자나 성도나 예외함 없이 모두 자라나야 합니다. 바울이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도 그리고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도 말했듯이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숙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나이는 몇 살입니까? “주님 저는 몇 살인가요?” 신체적인 나이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나이는 더더욱 중요하기에 성경의 거울을 통해 부족한 것이 있다면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성숙해져 가는 영적 축복의 시간으로 삼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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