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열 시상] 봄이 오는 소리
친구여!
지난 주까지도 삐죽 삐죽 앙상한 나뭇가지로 덮인 산능선이
이제 연한 녹색 실루엣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새순이 돋으려고 꿈틀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고
겨우내 덮인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며 기지개 펴는 들풀들의 하품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저만큼서 오고 있는 봄의 발자욱 소리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의 겨울잠에서 깨어나 남아있는 뒤안길을 호미질하기 전에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돌리며 바쁜 체하는 걸음을 잠깐만 멈추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잊었던 나를 이 봄에 찾아야 하겠습니다.
무덤덤하고,
반짝 반갑지도 않은,
그림자 같은 사람,
오래 함께 하면서 익숙해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온 생의 동반자,
늘 곁에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저 사람의 잠든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도 가져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치의 사람으로,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으로 깨어날 수 있도록
언 땅을 뚫고 고개 내미는 들풀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마음과 시선을 불러 모아서
측은지심의 여유를 할애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숱하게 보내 버린 봄과는 전혀 다른 봄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늘 함께 걸어온 산책길 발걸음의 무게가 달라질 것이며
비틀거릴 때 붙잡아주는 손길의 체온이 다를 것이고
늘 함께 마셔온 커피 맛이 달라질 것이며
서로 마주 보는 눈빛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함께 걷게 될지는 몰라도
오늘 하루만큼 짧아진 소풍길,
날마다 줄어드는 우리의 여행길,
오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쉬움이 설레임으로,
나의 새봄이 채워져 가기를 소망하며
봄이 오는 길목에 마중 나와서 싱그러운 새 봄을 기다립니다.
클락스빌에서 이 정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