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수상] 아듀 (adieu)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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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아무 생각없이 혹은 습관적으로 지나간 한 해를 뭉뚱그려 표현할 때 우리는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올 한 해처럼 다사다난한 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들은 하루하루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산불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았고, 코로나 바이러스19 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인해 11월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6천만 명 이상의 확진자에 1백 4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확진자 수는 아직까지 감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세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던 흑사병(페스트)만큼은 아니지만 비약적으로 발달한 의료기술이나 장비, 의료진들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그리고 어느 한 지역이 아닌 글로벌한 전염병인걸 감안하면 페스트 못지않게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을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집단 항체가 생기기까지의 필요충분 조건이랄 수 있는 75% 정도의 사람들이 접종을 해야 하고 항체가 생기기까지 기다리는데 필요한 기간이 얼마일지 정확히 산출해내기가 힘들다는 문제도 있고 이 백신의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도 팬데믹을 벗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전망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몇몇 업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지니스가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소비심리도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연말연시를 맞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올성 싶지 않은 암담하고 암울한 시기 같지만 지난 역사가 늘 그러했듯이 우리는 이 시기를 잘 넘겨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후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의 요즘 유행어 버전입니다) 하고 현재를 반추(反芻)하게 될 것입니다.

정 연복 시인은 <희망> 이라는 시에서 ‘바람에 지는 꽃잎을 서러워하지 말자/ 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 열매의 속살은 돋으리/ 서산마루를 넘는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지 말자/ 내일 아침이면 눈부시게 태양은 다시 떠오르리/ 칠흑 같은 어둠 속 폭풍우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말자/ 이윽고 파란 하늘 저 편 찬란한 무지개가 피어나리/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 고 했고, 아동문학가 윤 수천 씨는 ‘이왕이면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어 두게나/ 당장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추억이 된다네/ 우리네 삶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즐거웠던 일보다는 쓰리고 아팠던 시간이 오히려 깊이 뿌리는 내리는 법/ 슬픔도 모으면 힘이 된다/ 울음도 삭이면 희망이 된다/ 정말이지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고 살게나/ 세월이 지나고 인생이 허무해지면/ 그것도 다 노리갯감이 된다네’ 라고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리고 묵은 잎이 떨어져야 새 순이 돋아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지금 겪고 있는 얼마간의 시련은 깨달음을 얻는데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간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많은 것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을 겪으면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는 혜안(慧眼)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멈춰야 보이는 것처럼,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삶의 템포가 한 걸음 멈춰진 지금 깨닫게 된 지혜로 새해 신축년(辛丑年)이 조금 더 내실 있고 풍성하게 채워지는 한 해 되기를 기원합니다.

독자 여러분,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무탈하시고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